NetSci2010 & CompleNet2010

올해 열리는 네트워크 과학 관련 학회를 소개합니다.

NetSci2010

가장 유명한 학회입니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노스이스턴 대학교와 MIT 캠퍼스에서 열립니다. 키노트는 Stuart KauffmanMark Newman입니다. 계속 추가되는 연사들의 목록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정하웅 교수님이 계시네요. :) )

홈페이지: http://netsci2010.net/

트위터: http://twitter.com/NetSci2010

일시: 5월 10일부터 14일

장소: 노스이스턴 대학교, MIT (미국, 보스턴)

조직위원: Marta C. González (MIT), César A. Hidalgo (Harvard), Ginestra Bianconi (Northeastern), Albert-László Barabási (Northeastern)

초록 제출: 2월 26일까지


CompleNet2010

어쩌다 보니 프로그램 커미티가 된 학회입니다. 올 가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립니다. 장소도 매력적이고 꽤 재미있는 학회가 될 것 같습니다.

홈페이지: https://cs.fit.edu/Projects/complenet/CompleNet/Home.html

트위터: http://twitter.com/CompleNet

일시: 10월 13일부터 15일

장소: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조직위원: Giuseppe Mangioni (University of Catania), Ronaldo Menezes (Florida Tech.), Vincenzo Nicosia (University of Catania)

논문 제출: 5월 31일까지

Call for papers

This international workshop on complex networks (CompleNET 2010) aims at bringing together researchers and practitioners working on areas related to complex networks. In the past two decades we have been witnessing an exponential increase on the number of publications in this field. From biological systems to computer science, from economic to social systems, complex networks are becoming pervasive in many fields of science. It is this interdisciplinary nature of complex networks that this workshop aims at addressing.

Authors are encouraged to submit previously unpublished papers on their research in complex networks. Both theoretical and applied papers are of interest. Specific topics of interest are (but not limited to):

  • Models of Complex Networks
  • Structural Network Properties and Analysis
  • Complex Network in Technology
  • Complex Networks in Biological Systems
  • Social Networks
  • Search in Complex Networks
  • Emergence in Complex Networks
  • Complex Networks and Computer Epidemics
  • Rumor Spreading
  • Community Structure in Networks
  • Link Analysis and Ranking
  • Geometry in Complex Networks
2010/01/31 07:43 2010/01/31 07:43

독감 백신의 위험에 대해

이정환:신종 플루보다 백신이 더 위험하다?

몇가지 주석.

다들 잘 알겠지만 백신은 병원체를 약하게 만들어 주입해서 몸 안에 항체를 형성하고 면역성을 키우도록 돕는 의약품이다. 백신 역시 바이러스의 일종인 셈인데 ...

병원체를 죽이지 않고 약하게 만든 백신을 생백신 (live vaccine) 이라고 부르며, 여러 종류의 백신 중 한 종류일 뿐이다1. BCG나 MMR (Measles-mumps-rubella) 백신이 좋은 예인데, 미국의 경우 예방 접종 전에 살아 있는 병원체가 들어있음을 알려준다. 반면에, 우리가 흔히 맞는 독감 예방주사는 바이러스를 죽여서 만든다2.

실제로 1976년에는 그해 유행했던 돼지독감으로 죽은 사람보다 백신의 부작용으로 죽은 사람이 훨씬 많았다.

참고로 돼지독감으로 죽은 사람은 한 명,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48,161,019명, GBS (Guillain-Barré syndrome) 로 사망한 사람 수는 25명이다3. 약 백만 명 중에 한 명꼴.

다만 길리안 바레 증후군을 보이는 환자 가운데 상당수가 1년 이내에 독감백신을 맞은 사실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물론 1970년대와 비교하면 백신 제조기술이 크게 발전했지만 올해 11월부터 접종받게 될 신종 플루 백신은 안전성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채 보급될 가능성이 크다.

언급된 연구결과가 궁금하다. 1년이란 시간은 꽤 길다. 예방 접종이 바로 GBS를 일으키지 않은채로 수 개월 동안 잠복했다가 GBS를 일으킬 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인다. 보통 감염이 원인이 되는 GBS의 경우 감염으로부터 한 달이내에 발병한다고 한다. 독감 백신 접종 통계를 잘 모르겠는데, 독감 백신을 맞는 사람이 충분히 많으면 무슨 병을 택해도 1년 이내에 독감 백신을 맞은 사람은 상당수가 될 것 같다.

GBS의 원인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유력한 용의자는 Campylobacter jejuni 감염이라고 한다4 최근에는 독감 바이러스가 GBS를 일으킨다는 주장이 등장했다5

CDC 웹사이트에는 독감 예방주사와 GBS의 관계에 대한 안내 페이지가 있다6.

Several studies have been done to evaluate if other flu vaccines since 1976 were associated with GBS. Only one of the studies showed an association. That study suggested that one person out of 1 million vaccinated persons may be at risk of GBS associated with the vaccine.

1976년 돼지독감 사태이후 독감 예방주사와 GBS의 발병사이의 관계를 밝히기 위한 연구가 여럿 있었지만 그 중 하나의 연구에서만 상관관계가 보였다고 한다. 1976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방주사가 GBS의 위험을 높이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예 부정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 그래도 백만명 중의 한 명꼴이면 매우 희귀하므로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GBS가 발병해도 대부분은 건강하게 회복되므로, 독감 백신으로 GBS가 발병해서 사망까지 이를 확률은 일반적인 독감의 사망률과도 비교할 수 없이 작다.

미국에서 이번 신종독감 백신의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NIAID (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s) 는 최근 500명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서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았고, 그래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7.

  • http://www.infowars.com/category/flu-pandemic/
  • http://globalresearch.ca/index.php?context=newsHighlights&newsId=46
  • http://globalresearch.ca/index.php?context=va&aid=14618
  • http://www.vaccine911.com/vacreference.pdf
  • http://www.greatfallspro.com/vaccine.htm

글에 링크된 위 사이트들을 들어가서 잠시 훑어봤는데 근거자료는 부실하고, 수은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떡밥8이 넘실대고, 인용된 논문을 몇 개 찍어서 찾아봤더니 검색도 안 된다. 그래도 무려 Lancet에 실린 논문이 있길래 찾아봤더니 두 번 인용됐고, 그중 한 논문은 Lancet에 실린 논문의 연구 방법이 잘못됐다는 내용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어). 더이상 시간을 쓸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구지 '신종'이 아니더라도 독감은 한국에서 매년 (아마도)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병이다. 이런 병을 효과적으로 막는 방법인 예방접종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1. http://en.wikipedia.org/wiki/Vaccine#Types [Back]
  2. 다만 코에 뿌리는 방식의 백신은 생백신이다. cdc의 안내 (pdf) [Back]
  3. 위키백과(http://en.wikipedia.org/wiki/Swine_flu#1976_U.S._outbreak) [Back]
  4. S. Kuwabara et al., Does Campylobacter jejuni infection elicit "demyelinating" Guillain-Barre syndrome? Neurology. 2004 Aug 10;63(3):529-33 [Back]
  5. V. Sivadon-Tardy et al., Guillain-Barré syndrome and influenza virus infection. Clin Infect Dis. 2009 Jan 1;48(1):48-56 [Back]
  6. http://www.cdc.gov/FLU/about/qa/gbs.htm [Back]
  7. http://www3.niaid.nih.gov/news/newsreleases/2009/H1N1pedvax.htm [Back]
  8. 코리아헬스로그:백신 수은 보존제 감소불구 자폐증은 증가해 [Back]
2009/08/31 10:55 2009/08/31 10:55

네트워크 위에서 전염병 막기

너구리님이 쓰신 그림으로 이해하는 전염병 확산 매커니즘을 보고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방법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설명해본다.

앞선 글에서 설명했고, 너구리님도 그림으로 보여주셨듯이, 질병 모델에 네트워크라는 요소를 넣으면 허브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웃이 많기 때문에 병에 걸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대략 이웃의 수에 비례하여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이렇게 병에 걸리게 된 허브는 또 많은 이웃에게 병을 퍼뜨린다. 이런 허브의 효과로 인해, 허브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크 존재하는 네트워크에서는 전염병을 막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그럼 우리가 손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손이나 열심히 씻어야 하는 걸까?

허브가 전염병을 퍼뜨리는 데 몹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한 연구자들은 곧, 반대로 허브가 병에 걸리지 않도록 막기만 하면 병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1.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상황에서 제한된 수의 격리나 예방 접종만이 가능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만약 되는 대로 사람들을 격리/접종 한다면 전염병은 별 문제 없이 전체 네트워크로 퍼져 나간다. 반면에, 허브들을 골라내어 이웃이 많은 허브부터 격리/접종을 하면 전염병은 확산되지 못한채 사라진다.

사실 이 결과는 네트워크 과학의 초기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논문인 "Error and attack tolerance of complex networks"라는 논문2의 결과와 일맥상통한다.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척도없는 네트워크의 구조는 임의적으로 노드를 망가뜨리는 'error'에는 대단히 강하지만, 허브를 차례대로 망가뜨리는 'attack'에는 너무나 쉽게 망가진다. 말하자면, 척도없는 네트워크에서는 허브가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어주고 있기때문에 이 허브들이 온전하게 살아남아 있는 한은 네트워크의 구조가 보존된다는 것이다.

전염병 동역학의 맥락에서 이 결과를 다시 해석해보자. 임의적으로 사람들을 격리시켜 네트워크에서 제거한다면, 허브들은 남아 네트워크를 잘 묶어주고 있을 것이므로 전염병은 여전히 잘 퍼질 수 있다. 네트워크에서 허브부터 제거한다면, 네트워크의 구조는 쉽게 망가지고, 전염병은 더 이상 퍼질 수 없게 된다. (이 모든 결과들은 네트워크의 percolation 성질과 연결되어 있다.)

실현되기는 매우 어려워보이지만, 이론적으로는 재미있는 또다른 가능성은 위험한 전염병과 매우 비슷한 사촌 전염병을 위험한 전염병보다 먼저 퍼뜨리는 것이다. (예방 접종과의 차이점은, 구지 사람들이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과 자칫 잘못하면 변종이 진화하여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성이 추가된다는 점이다.) 이때, 사촌은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의 면역 시스템이 보기에는 충분히 비슷하여 위험한 전염병에 대한 면역을 생성해주어야 한다 (교차 면역, cross immunity)3. 만약에 이런 이상적인 상황이 가능하다면, 네트워크 위에서 위험한 질병이 퍼져나가기에 적당한 경로 (주로 허브들) 를 정확히 그 사촌이 먼저 퍼져나가 면역을 생성시키게 되므로 전염병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게 된다4



  1. Romualdo Pastor-Satorras, Alessandro Vespignani, Immunization of complex networks, Phys. Rev. E 65, 036104 (2002) ; Zoltan Dezso, Albert-László Barabási, Halting viruses in scale-free networks, Phys. Rev. E 65, 055103 (2002) [Back]
  2. Réka Albert, Hawoong Jeong & Albert-László Barabási, Error and attack tolerance of complex networks, Nature 406, 378-382 (2000) [Back]
  3. 교차면역은 자연에서 흔히 관찰되는데, 한가지 흥미로운 예는 나병 (leprosy) 과 결핵 (tuberculosis) 이다. 전혀 달라보이는 두 병이지만, 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는 Mycobacterium genus에 속하는 친척이다. 나병은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서유럽의 풍토병이었지만, 17,18세기에 결핵이 유행하는 것과 동시에 거의 자취를 감추었는데, 이 현상이 두 병 사이의 교차 면역 때문이라는 가설이 꽤 설득력이 있다. [Back]
  4. M. E. J. Newman, Threshold effects for two pathogens spreading on a network, Phys. Rev. Lett. 95, 108701 (2005) - 첫번째 병이 퍼져나가고 난 뒤에 남게 되는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네트워크 구조를 수학적으로 풀었다. 꽤 아름다운 논문. [Back]
2009/05/05 11:31 2009/05/05 11:31

H1N1 독감

먼저, 이번 독감에 대해 유익한 글을 올려주고 계신 블로그들을 소개한다. (특히 crete님의 활약이 눈부시다. ㅎㅎ)

Be Alert

전염병이 퍼지는데 매우 중요한 것은 인구 집단의 크기이다. 많은 전염병들은 'crowd disease' 라고도 불린다. 전염병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보통 일정 크기 이상의 큰 집단 (끊임없는 새로운 숙주의 보충) 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농업은 이런 큰 규모의 집단을 만들어 냄과 동시에 다양한 전염병을 인간에게 가져왔는데, 이에 대해 Arno Karlen은 전염병의 문화사 (Man and Microbes)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농업은 인간에게 너무도 많은 새로운 병원균을 가져다주어서 인류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p66, 전염병의 문화사)

큰 도시가 형성되면서 전염병은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발생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시는 전염병의 온상이었다. 사실 마을이 큰 도시가 되고서야 대규모 죽음이 인간사의 일상적인 부분이 되었다. ...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의 주요 사망 원인은 사고와 부상이었다. 그러다가 영구적인 농경과 촌락 생활 덕분에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 더욱 흔하게 되었다. (p80, 전염병의 문화사)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현대의 도시에는 과거와 비교할때 훨씬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게다가 발전된 항공망은 수많은 사람들을 한 도시에서 또 다른 도시로 매 시간 운반하고 있다. 과거의 세계가 약하게 연결된 격자 구조였다면, 현재의 세계는 강하게 연결된 작은 세상 네트워크 (small-world network) 이다. 스페인 독감이 돌았던 1918년이 세계적인 항공망이 갖추어지기 전이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항공망으로 연결된 현재의 세계가 처한 위험은 비교할 수 없이 커 보인다. 1918년의 독감도 전쟁으로 인해 대량으로 수송된 군인들에의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네트워크 이론은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네트워크 구조를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전통적인 전염 모델에는 언제나 0이 아닌 전염 한계치 (epidemic threshold) 가 존재한다. 전염 한계치는 전염병이 전체 집단에 퍼질 수 있는지 아니면 매우 적은 수의 사람들만을 감염시킨 뒤 사라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인데, 전염병의 전염율과 치료율의 비가 이 전염 한계치보다 높으면 전염병이 전체 집단으로 퍼지게 된다. 반대로 그 비율이 전염 한계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전염병은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전염율을 낮추거나 치료율을 증가시킴으로써 전염병을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런데 허브가 충분히 많이 존재하는 척도없는 (scale-free) 네트워크에서 전염병이 퍼질 경우, 네트워크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전염 한계치는 0으로 수렴한다1. 다시 말해 무슨 수를 써도 전염병의 전염력를 전염 한계치 아래로 줄이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큰 허브일 수록 효과적으로 병을 전파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허브는 많은 링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염될 확률이 자연히 높아지며, 감염된 허브는 수많은 이웃들에게 병을 전파시키게 된다. 문제는, 세상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네트워크들이 척도없는 네트워크, 혹은 최소한 많은 허브가 존재하는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공항 사이의 항공망2과 성관계 네트워크3 가 중요한 예이다. 독감이 퍼져나가는 네트워크는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구조를 확실하게 알기도 어렵지만, 인구조사원과 같은 허브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SARS의 경우에도 'super spreader'라 불리는 소수의 환자들이 매우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켰다.

Don't panic

전염병이 퍼지기에 좋은 네트워크 구조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있음에도, 선진국에서 전염병에 걸려 죽는 사람의 수는 매우 드물다. 그 이유는 인류가 백신을 발명하고, 훌륭한 감시 & 치료 체계를 만들고, 상하수도 시스템을 구축하고, 훌륭한 위생상태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들은 전염병이 새로운 숙주로 옮겨 가기 힘들게 만들어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차단해왔다.

작년에 병원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라는 글을 통해 폴 이왈드의 주장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다시 요약해본다.

  1. 병원체는 지속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이렇게 생겨난 수많은 변종들은 서로 경쟁하며 진화한다.
  2. 병원체에게 가해지는 두 가지 주요 선택압은 숙주 안에서 다른 병원체들과의 경쟁과 다른 숙주로의 전염이라는 경쟁에서 비롯된다.
  3. 숙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에서는 치명적인 (숙주로부터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는) 병원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4. 따라서 병원체가 숙주를 죽이거나 심하게 앓게 만들더라도 다른 숙주로의 이동이 용이하다면 병원체는 치명적인 방향으로 진화한다 (수인성 전염병이나 모기가 매개하는 전염병등).
  5. 반면에 병원체가 숙주를 죽이거나 심하게 앓게 만들 경우 다른 숙주로의 이동이 힘들어진다면 병원체의 독성은 약화된다.

그는 이 논리를 바탕으로 1918년과 같은 대유행이 다시 일어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주장의 골자는 1918년의 독감이 특수한 상황에서 진화한, 특별히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였다는 것이다. 그 특수한 상황이란 다름 아닌 제1차 세계 대전이었다. 1918년의 바이러스는 전선에 위치한 집단 병동 - 바이러스가 바로 옆의 환자에게 너무나 쉽게 옮겨 갈 수 있는 - 에서 처음 등장했기 때문에 강한 살상력을 가진 바이러스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쟁이 사회의 많은 기능을 마비시켰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유행을 차단하는 것까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회가 잘 기능하여 심하게 앓는 환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병을 옮기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면 전염병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H1N1 독감에 적용해보면, 이번 독감이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세계 대전과 집단 병동이라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과거의 교훈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적극적으로 이에 대처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를 보아도 환자들이 확인되는 즉시 치료를 받고 격리되고 있다. 게다가 crete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지금은 계절과 기온상 독감이 쉽게 퍼지기 힘든 계절이기까지 하다. crete님이 멕시코와 다른 나라의 사망률의 차이에 대한 포스팅에서 멕시코와 미국에서 발견된 바이러스가 유전적으로 일치한다고 말씀해주시긴 했지만, 현재까지의 사망자 발생 패턴은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4.

But, still.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위에서 소개한 주장은 설득력은 있지만, 검증은 힘들다. 생각지 못했던 다른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어 우리의 기대를 배반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처음에 설명한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구조'는 언제든지 전염병의 전파를 도와줄 수 있기때문에, 우리의 방심을 틈타 치명적으로 진화한 병원체가 전세계를 휩쓰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게다가 초기 진화에 실패하여 환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 병원들이 바이러스의 독성을 증가시키는 허브의 역할을 하는 것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각 국의 정부와 개개인들 모두 전염병 확산의 초기 단계에서 가능한 노력을 기울여 확산을 막는 것이 좋다.

결론은, "손을 잘 씻읍시다". ㅎㅎ


  1. Romualdo Pastor-Satorras and Alessandro Vespignani, Epidemic Spreading in Scale-Free Networks, PRL 86, 3200 (2001) free download (arxiv) [Back]
  2. R. Guimerà, S. Mossa, A. Turtschi, and L. A. N. Amaral, The worldwide air transportation network: Anomalous centrality, community structure, and cities' global roles, PNAS 102, 7794 (2005) ; Vittoria Colizza, Alain Barrat, Marc Barthélemy, and Alessandro Vespignani, The role of the airline transportation network in the prediction and predictability of global epidemics, PNAS 103, 2015 (2006) [Back]
  3. Fredrik Liljeros, Christofer R. Edling, Luís A. Nunes Amaral, H. Eugene Stanley & Yvonne Åberg, The web of human sexual contacts, Nature 411, 907 (2001) free download (arxiv) [Back]
  4. 처음 발병한 멕시코에서는 꽤 치명적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병이 전파됨에 따라서 독성이 감소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연구결과들을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crete님이 배제한 두번째 가능성이 얼마나 말이 되는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Back]
2009/05/03 13:59 2009/05/03 13:59

Happy Birthday, Mr. Darwin.

올해는 다윈이 태어난 지 200년이 되는 해인 동시에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다. Science지는 이를 기념하여 'Origins'라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블로그를 열었고, Nature지는 '진화의 보석 15개 (15 evolutionary gems)'라는 자료를 공개했다. 공부도 할 겸 틈틈히 소개해 볼 예정이다.

아, 그리고 오늘은 다윈의 생일.

2009/02/12 13:37 2009/02/12 13:37

웟슨과 크릭, 메셀슨과 슈탈

김우재:아인슈타인과 애딩턴

과학적으로는 이론과 실험 혹은 관측에 얽힌 과학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중요하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에딩턴에 의해 증명되었을 때 주목받았다. 과학에서 증명이란 이론보다 중요한 것이다. 측정량과 이론의 관계. 이 영화는 깊이 들어간다면 그런 것도 건질 수 있게 해주는 영화다.

이 글을 보다가 바로 어제 칼 짐머 (Carl Zimmer)의 책 Microcosm에서 읽은 부분이 생각났다. 아직 조금밖에 읽지 않았지만, 최소한 E.coli를 중심으로 분자생물학의 탄생 과정을 이야기해주는 앞부분은 무척 쉽고 재미있다.

Microcosm: E. Coli and the New Science of Life By Carl Zimmer

다음 인용은 웟슨과 크릭이 밝혀낸 DNA의 구조와 DNA의 복제 기작, 그리고 이를 강력하게 뒷받침해준 실험인 메셀슨과 슈탈의 실험을 소개한 부분을 번역한 것이다. 아마 과학, 특히 생물학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은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구조는 아름답고 단순했으며, 스스로 자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웅변하고 있었다. 각 인산염 가닥에는 수십억 개의 염기가 한 줄로 쓰인 문서처럼 박혀있었다. 염기들의 배열에 따라 이 문서는 무한히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DNA는 각 종들이 각각의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저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구조는 자신이 어떻게 복제하는지도 알려주었다. 웟슨과 크릭은 두 개의 가닥이 분리되어 각각의 가닥에 새로운 가닥이 더해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각 염기는 오직 다른 한 종류의 염기와 결합할 수 있으므로, 새로운 가닥을 만드는 것은 간단하다.

아름다운 착상이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견고한 증거는 별로 없었다. 막스 델브뤽은 그가 "untwiddling problem"이라고 부른 문제를 고민했다. 분리된 이중 나선이 엉망진창으로 엉켜버리지 않고 두 개의 새로운 이중 나선이 되는 것이 가능할까? 델브뤽은 이 질문에 답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성공은 1957년, 캘텍의 대학원생과 포스닥이었던 매튜 메셀슨과 프랑크 슈탈에게 왔다. E. coli의 도움으로, 그들은 후에 생물학의 가장 아름다운 실험이라고 불리게 된 실험을 수행했다.

메셀슨과 슈탈은 E. coli에게 특별한 음식을 먹임으로써 DNA의 복제과정을 추적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E. coli가 살아가려면 질소가 꼭 필요한데, 그 이유는 바로 DNA의 모든 염기에 질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질소는 14개의 양성자와 14개의 중성자를 가지지만, 이보다 더 적거나 많은 중성자를 가진, 가벼운 질소, 무거운 질소도 존재한다. 메셀슨과 슈탈은 먼저 중성자를 15개 가진 무거운 질소가 들어간 암모니아로 E. coli를 키웠다. 그들은 박테리아가 오랫동안 복제를 하도록 놓아두고 나서 DNA를 추출하여 원심분리기로 돌렸다. 원심 분리기 안에서 DNA가 얼마나 멀리 움직였는지를 측정하면 DNA의 무게를 잴 수 있다. 기대했던 대로, 무거운 질소를 먹고 큰 E. coli의 DNA는 보통 E. coli의 DNA보다 무겁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메셀슨과 슈탈은 두 번째 실험으로 넘어갔다. 그들은 무거운 질소를 먹고 큰 E. coli를 다른 플라스크에 넣어 14개의 중성자를 가진 보통 질소를 섭취하도록 하였다. 정확히 E. coli가 한 번 분열하는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 그들은 이 E.coli 를 바로 꺼내 원심분리기로 분석했다. 메셀슨과 슈탈은 만약 DNA의 복제에 대한 웟슨과 크릭의 생각이 맞았다면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세포 안의 무거운 두 가닥은 서로에게서 분리되었을 것이고, 여기에 가벼운 질소로 만들어진 가벼운 가닥이 새로 더해졌을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E. coli가 가진 DNA는 반은 무겁고, 반은 가벼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 DNA는 이전의 실험에서 가벼운 가닥과 무거운 가닥이 만든 두 표식의 중간에 새로운 줄을 만들어야 한다. 이 예측은 메셀슨과 슈탈이 관찰한 결과와 정확히 일치했다.

웟슨과 크릭이 아름다운 모형을 만들었을지는 모르지만, 다른 과학자들이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E. coli를 이용한 아름다운 실험이 필요했다.

Carl Zimmer, Microcosm, pp. 16-17

참고

2009/02/07 17:35 2009/02/07 17:35

Martin Wattenberg와 Many Eyes

오늘 Many Eyes의 그룹 매니저인 Martin Wattenberg가 방문해서 세미나를 했다. 위키백과 시각화NameVoyager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시각화를 보여주었고, 사람들이 데이터를 자유롭게 시각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플랫폼인 Many Eyes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가 세미나에서 반복해서 강조했던 것은 데이터 시각화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힘든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가 Many Eyes를 시작하게 된 것도 시각화 그 자체가 줄 수 있는 가치에 대한 느낌때문이었다고 한다. 별로 놀라운 정보를 보여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시각화에 열광한다. 그가 든 한 예는 뉴욕타임즈에서 many-eyes를 소개한 기사에 실린 신약성경의 사회 연결망이었다. 이 그림이 담고 있는 정보는 그렇게 놀라울 게 없었지만, 종교 커뮤니티에서는 상당한 반향을 불러왔다고 한다.

2009/01/27 12:31 2009/01/27 12:31

정보이론과 압축 - 1

다음 중 어떤 문자열이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을까? 어떤 문자열이 더 복잡할까?

01010101010101010101010101010

11000101010001001000100100010

'정보'나 '복잡도'의 정의를 명확히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도 누구나 두번째 문자열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면 왜 첫번째 문자열은 덜 복잡하고, 적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느껴질까? 간단한 접근 방법 한가지는 우리의 일상어를 가지고 문자열을 기술해 보는 것이다. 첫번째 문자열은 매우 쉽다. "'01'이 xx 번 반복되는 문자열"이라고 하면 된다. 이 기술을 들은 사람은 첫번째 문자열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다. 반면에 두번째 문자열은 간단한 기술이 어렵다. "11000, 다음에 10이 세 번 반복되고, 001이 두 번 나오고, …"와 같이 말이 길어진다.

자연어를 이용한 위의 접근은 너무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정보이론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Kolmogorov complexity (혹은 algorithmic entropy, 이하 KC) 를 잘 묘사하고 있다. 대강 말하자면, 주어진 문자열의 KC는 그 문자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짧은 프로그램의 길이로 정의한다. 어떤 문자열이 복잡하다거나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의 의미는 곧, 그 문자열을 만들어내는데 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마나한 소리 같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KC는 추상적인 개념이며 Halting problem과 엮여 있어서 계산 가능하지도 않다. 하지만, 개념 자체는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일례로, 우리는 매일 매일 컴퓨터에게 주어진 문자열의 KC 값 추정을 지시하고 있다. 무슨 소리냐고? 압축프로그램이 하는 일이 주어진 파일을 가능한 한 작은 크기를 가지도록 변환 – KC의 추정치를 계산 –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Zip bomb라는 것이 있다. 시스템을 감시하고 있는 백신 소프트웨어들을 무력화 시키는 용도로 주로 쓰이는 압축 파일로, 맨 처음 예로 들었던 첫 문자열 '01010101...' 과 같은 것이다. 이런 문자열은 아무리 길어도 매우 짧은 프로그램으로 기술할 수 있다 (압축이 잘 된다). Zip bomb는 이걸 극단적으로 응용한 것으로, 압축 프로그램을 일종의 프로그램 실행기로 보고 이 프로그램 실행기를 통해서 어마어마한 양의 출력을 내보내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42.zip' 이라는 유명한 zip bomb의 경우 파일 크기가 42 킬로바이트 정도에 불과하지만 압축을 모두 풀면 4.5 페타바이트 (~4500 테라바이트) 에 달하는 파일을 만들어 낸다.

더 재미난 예는 다음 글에서...

2008/10/20 08:42 2008/10/20 08:42

병원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김우재:산모기와 집모기에 의한 가려움증의 차이에 대하여를 읽고 씁니다.

우재님이 '숙주와 기생체의 상호작용이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숙주에게 독성이 강한 기생체의 비율이 줄어들게 된다'라는, 전염병학의 통념이 최근에 도전을 받고 있다는 언급을 하셨습니다. 마침 저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이고, 게다가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책도 관계가 깊어 이에 대해 조금 써 보려고 합니다 (더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는 전문가이신 byontae님의 블로그에서 ㅎㅎ).

전염병 시대 - 8점
폴 W. 이왈드 지음, 이충 옮김/소소

이 책의 도입부에서는 왜 이러한 통념이 틀렸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통념은 '숙주에게 심한 해를 입히거나 죽이게 되면 전파가 힘들어지므로 독성이 약해지는 방향으로 공진화한다'는 생각을 깔고 있는데,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이 상당히 순진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선택압이 병원체에게 작용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편견을 버리고 실제 병원체가 맞닥뜨리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두 종류의 시험

The strategic options can be envisioned as a competition that is played out in two contests. The first contest occurs within the host, where the favored competitors are those that most effectively use the host as food for their own reproduction. The second contest is played out in the transmission of pathogens to new hosts; those pathogens hat have been successful at growing within hosts are now in competition to reach the remaining uninfected members of the society. ...

These two contests require different talents. ...

병원체는 대략 나눠봤을때, '숙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이후 '다른 숙주로의 전파'라는 시험까지 통과해야만 비로소 성공한 병원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시험이 요구하는 자질은 다릅니다. 첫번째 시험은 보통 활발한 복제능력, 숙주의 자원을 최대한 쥐어짜는 능력을 요구하는 반면, 두번째 시험은 보통 숙주가 다른 숙주를 감염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을 요구합니다. 간단한 예로, 어떤 병원체의 변종이 숙주를 최대한 이용하는데 성공하여 많은 자손을 남기고 다른 병원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숙주를 죽게 만들거나 가만히 누워있게 만들어 다른 숙주로의 이동이 불가능해졌다면, 이 변종은 완벽한 실패로 끝난 것입니다. 역으로 아무리 다른 숙주로 잘 옮겨가는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숙주안에서 다른 변종에게 도태된다면 이 역시 실패작입니다.

첫번째로 든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병원체의 독성이 약해진다는 통념을 지지하는 논리로 보입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병원체가 숙주를 죽이거나 심하게 앓게 만들더라도 다른 숙주로 이동할 방법만 존재한다면 병원체의 입장에서는 숙주의 건강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도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의 역사에서 맹위를 떨쳤던 병들은 대부분 이렇게 숙주가 죽거나 심하게 앓아도 다른 숙주로 이동할 방법을 확보한 병원체가 일으킨 병들입니다.

의학이 일궈낸 그 어떤 진보도 상하수도 시스템의 정비만큼 많은 목숨을 살리지는 못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물을 통해 전파되는 수인성 전염병은 많은 사람들을 죽여왔으며, 지금도 개발도상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사망 원인 4위가 설사입니다).

Cholera

가장 유명한 병은 콜레라인데, 20세기 중반까지도 맹위를 떨치며 한 번 발생할때마다 수천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을 죽이곤 했습니다. 콜레라에 걸리면 콜레라균이 다량 함유된 설사를 계속해서 하게 되어 탈수를 일으킵니다. 설사로 오염된 물은 몸 밖으로 나온 콜레라균을 다른 숙주에게로 운반해줍니다. 한 명의 설사로 오염된 물은 수만 명을 감염시킬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숙주가 살아남았는지는 콜레라균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숙주가 최대한 많은 설사를 생산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콜레라균은 치명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폴 이왈드는 2007년 TED talk에서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들을 제시해줍니다.

그의 설명처럼, 수인성 전염병의 독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선택압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물 - 전염병을 매개하는 고리를 끊는 것 - 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기

모기나 다른 살아있는 매개체의 경우에도 비슷한 논리가 성립합니다. 숙주가 심하게 아파서 아무와도 만나지 못한채 누워만 있더라도, 모기가 쉽게 병원체를 옮겨줄 수 있습니다. 더 나쁜 것은, 아파서 앓아 누운 환자가 모기에게는 더 쉬운 사냥감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숙주가 더 심하게 앓게 만드는 방향의 선택압이 작용할 수도 있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매년 백 만명 이상을 죽이는 치명적인 질병인 말라리아입니다. 말라리아 역시 매개체인 모기를 막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일 수 밖에 없습니다.

병원성 전염병

병원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간호사나 의사들이 병원체를 옮기는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철저한 위생상태를 유지한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실제로 모두가 청결함을 완벽하게 유지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간호사나 의사가 일단 매개체로 기능하기 시작하면, 모기가 옮기는 병의 경우처럼 병원체는 숙주의 건강에 신경 쓸 이유가 줄어들게 되고, 따라서 치명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기 쉬워집니다.

천연두, 결핵

천연두나 결핵은 조금 다른 경우입니다. 이들은 숙주이외의 매개체가 존재하여 병원체를 운반해주기 보다는 자신들의 터프함으로 건강한 숙주가 자신을 흡입할 때까지 숙주의 몸 밖에서 버팁니다. 천연두의 경우가 특히 강하죠 (영화로 만들어질만 하죠. ~_~).

No one knows exactly how long it can last in the external environment. In one study smallpox scabs were stored in an envelope that was left on a shelf in a lab cabinet. By sampling the scabs periodically, the researchers demonstrated viable viruses for thirteen years. They could not continue the study because thirteen years of testing had used up all the viruses in the envelope.

... Such durability explains why American Indians in the colonies of New York and Pennsylvania were decimated by smallpox. Lasting for a few days or weeks on the infamous smallpox-laden blankets distributed to American Indians from a colonial outpost would be difficult for most viruses, but not for a virus that could last more than thirteen years on a lab shelf. There were even more morbid consequences of this durability. In 1757, after French fores took over Fort William Henry in northeastern New York, their Indian allies began digging up English graves. They got the scalps they were after, but they also apparently retrieved smallpox viruses that were lying in wait in the corpses of those who had died from the disease.

결핵균은 몸 밖에서 수 주에서 몇 달 정도까지 살 수 있으며, 폴 이왈드는 이것이 바로 리팜핀 같은 결핵약이 등장하기 전에 결핵이 천연두 바로 아래에 위치한 치명적인 질병이었던 이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감기를 일으키는 병원체는 몸 밖에서 보통 몇 시간밖에 버티지 못한다고 합니다.

조류독감은 얼마나 위험할까

폴 이왈드는 이런 논의를 끌고 나가 조금 위험한(?) 주장 - '앞으로는 1918년의 스페인 독감같은 치명적인 독감의 대유행이 없을 것이다' - 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시간 나는대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2008/08/06 12:37 2008/08/06 12:37

광우병 - 존 검머 2


deulpul님의 글, 존 검머 이야기을 보고 씁니다. (출국 준비 관계로 심한 뒷북을 칩니다. ^^;; )

제 글의 의도

광우병의 공포를 과장하는 분들은 존 검머와 엘리자베스의 극적인 일화를 인용하며 '광우병은 무척 위험하며, 그걸 무시한 댓가는 존 검머와 엘리자베스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엘리자베스 본인은 죽어가면서도 언론에게 대중을 선동하지 말라고 부탁했으며, 그녀의 부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즉, 이 사건의 주인공들은 이 사건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발언을 계속 해왔으며, 이러한 사실은 언론이나 미국 쇠고기 수입을 강하게 반대하시는 분들에 의해 인용될 때에는 항상 생략되었습니다.

제가 지난 번에 썼던 글, 영국 농림부 장관 존 검머는 바로 이런 역설을 지적하기 위해 쓴 글이며 그 이상을 내포한 글은 아닙니다.

(사족인데, 희생자 가족들을 비롯하여 영국 국민들이 존 검머를 비난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라고 생각해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만 deulpul님이 지적하신 것과 같은 오독의 여지가 있긴 있겠군요. 그리고, deulpul님의 글을 읽으며 들었던 의문점은, 정말 스미스 부부와 엘리자베스의 행동이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hadream님이 썼던 글을 보고 기사를 찾아 읽은 후, 그들의 행동이 저의 무의식적인 기대를 배반하여 꽤 놀랐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검머의 극적인 쇼와 딸의 고통을 직접 보고서도 그렇게 이성적으로 대처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안전에 대한 과장과 위험에 대한 과장

deulpul님은 존 검머 사건에 대한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주셨고, 그것을 바탕으로 위험에 대한 과장뿐 아니라, 안전에 대한 과장이 위험하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중요한 지적이며, 위험이 매우 과장되어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제 입장에서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고 봅니다.

이 사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상식적 교훈은, 현재 실체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고 진행중인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I can assure 할 수 없으며, 누구도 자만할 수 없으며, 누구도 다른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질 수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질병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란 현재적 지식일 수밖에 없으므로,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서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실험실 안에서도 그래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발언에서는 훨씬 더 보수적이어야 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판단과 세일즈는 바로 불필요한 희생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한 부분은 당위에 가깝습니다. '얼마나' 보수적이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겠지만, 파괴적 결과가 있을지도 모르는 경우에는 위험 요소가 작아보여도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낫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일 것입니다.

그런데, deulpul님은 이러한 원론적 이야기와 우리의 무지에 대한 단정을 바탕으로 한쪽 주장을 정당화하고 계시며, 저는 이러한 논증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몰랐으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 바로 이 점이 핵심이다. 현재 인간광우병은 그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조차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 혹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알려지지 않은 실체를 놓고 조금씩 그림 맞추기를 하며 전체 모습을 파악하려 애쓰는 중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필연적으로 다양한 견해, 다른 주장들이 혼재되어 있다. 의료과학계에서도 말이다.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모르고 있을까요? 우리의 현재 지식에 대한 논의가 없는 채로,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 혹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며, 공허합니다. 물론 광우병의 원인이 프리온인지 아닌지조차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등, 광우병에 대한 연구에 다양한 견해들이 혼재되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로부터 우리가 위험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없음이 당연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대단히 많은 BSE 발병사례를 가지고 있는 영국의 통계를 가지고 있으며, 많은 연구자들이 상당한 사실들을 밝혀내었습니다. 수십년간 쌓인 우리의 지식을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한마디로 일축하는 것은 무지에 대한 과장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가 자명하지 않은가. 제2의 존 검머들이 나와, 그 때는 어쩔 수 없지 않았냐,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하는 소리를 뒤늦게 일삼는 꼴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deulpul님의 결론은 자명하지 않습니다. deulpul님은 광우병의 과거 통계 자료, 수많은 연구 결과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신 채로, 우리가 '얼마나' 모르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도 전혀 제시하지 않으신 채로,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위험은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당위명제와 미국의 경우와는 상이한 영국의 경우를 바탕으로 '자명하다'는 결론을 너무나 쉽게 내리고 계십니다. 정부의 협상 과정, 결과, 그리고 이후의 조치에서 야매성이 풀풀 풍겨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식의 논리에는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2008/05/12 14:23 2008/05/12 14:23

광우병

작년 10월에 광우병에 대한 위험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있으며 이러한 공포마케팅이 자가발전하고 있다는 우려로 인해 광우병의 위험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위 글들은 정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광우병의 위험과 기타 여러가지 관련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고, 앞으로 쓰는 글도 그럴 것입니다. 이번 쇠고기 정책은 럼스펠드 면담 무산, 부시 면담 무산, 석유 날려먹기, 참여정부가 해놓은 일가지고 생색내기처럼, MB식 야매외교의 전형이라는 느낌이지만,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떠돌아다니는 현재 상황도 만만치 않은 문제입니다. 주제별로 틈틈이 글을 올리겠습니다.

광우병 관련 자료와 참고할 만한 글은 광우병에 관한 제 위키 페이지에 링크해 놓았습니다. 여기 링크되어 있지 않은 좋은 자료가 있으시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2008/05/12 14:20 2008/05/12 14:20

광우병 - 영국 농림부 장관 존 검머

추가: 존 검머의 딸 코델리아는 살아 있습니다. vCJD로 죽은 것은 존 검머의 친구 스미스 부부의 딸 엘리자베스입니다.


제 글에 다음과 같은 코멘트가 달렸습니다.

영국내 광우병 위험론이 나올때 영국 농무부장관 존검머는 BBC에 자신의 딸 코델리아와 나와 햄버거를 먹으며"광우병 안전합니다" 를 연발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국내 공식적 인간광우병환자가 없을때니 님처럼 주장할수 있었죠.그 결과가 어땠습니까? 수십명이 cjd로 사망하고 심지어 그의 친구의 딸까지 얼마전 광우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도 그 당시로는 광우병의 위험이 보이지않고 단지 가능성에 불과했기에 저리 나와서 햄버거를 먹으며 저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보이지않는 "위험"을 보이지않는다고 무시한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hadream.com

진위여부가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2007년 10월에 Times에 실린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Mr Gummer, who was Agriculture Minister during the first outbreak of BSE, was pilloried in 1990 for trying to feed his daughter, Cordelia, a burger in front of television cameras. She shrank away from the burger, but he took a large bite himself, pronouncing it “absolutely delicious”. The link between eating beef and vCJD was confirmed six years later.

BSE(소광우병)이 발생했던 1990년, 그는 당시 4살이었던 딸 코델리아를 기자회견에 데리고 나와서 햄버거를 먹이려 했다는군요. 코델리아는 햄버거를 피했고, 검머가 스스로 한 입 베어 문 다음에 "정말 맛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소고기와 vCJD의 관계는 이 사건이 있은지 6년후에 어느정도 밝혀졌습니다.

BBC의 2000년 10월 기사 John Gummer:Beef eater를 보면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John Gummer는 광우병으로 32명이 죽은 뒤에도 그 당시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Adults, about themselves, may take a certain kind of risk," said the father of four. "They smoke and of all sorts of things. The only fair question, I think, before I made a comment to the public was that I thought this was safe for my children to eat."

그는 언제나 위험 요소는 있는 법이며, 그 당시 자신의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을만큼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했기때문에 대중에게도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말했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At the end of the hearing, the panel asked him if the BSE crisis had changed his eating habits. He told them that if anything he ate more beef because it was cheaper that it used to be.

광우병 파동으로 식습관이 바뀌었냐는 질문에는 쇠고기가 싸져서 많이 먹게 되었다고;;

다시 2007년 Times 기사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존 검머의 친구인 로저 스미스, 몰리 스미스 부부의 딸 엘리자베스 스미스는 21살 생일때 vCJD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고, 23살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곳 저곳에서 보았던 내용인데, 기사의 후반부는 새롭습니다.

Mr Smith said that his daughter rarely ate burgers as a child and enjoyed a healthy diet. “I think her average consumption was probably about one per cent of the national average,” Mr Smith said. “If you live in the depths of the countryside, like Elizabeth did, there aren’t burger bars everywhere so she hardly ate any.” He added: “She ate a perfectly normal and healthy diet. Sometimes she would have meat with a meal, sometimes she wouldn’t. It wasn’t one particular kind of meat, either.

엘리자베스는 버거는 거의 먹지 않았고, 일반적인 식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Mr and Mrs Smith, of St Margaret South Elmham, Suffolk, paid tribute yesterday to the way their daughter had fought the disease and defended Mr Gummer, saying that he had been unfairly treated in the press.

엘리자베스는 병과 싸우면서도 언론이 존 검머를 부당하게 다루고 있다며 그를 방어했다고 합니다.

“John, not for the only time in his life, was unfairly treated by the press,” Mr Smith said. “It was a load of old cobblers. It didn’t change the way I viewed meat. It changed the way I viewed the press.”

로저 스미스도 존 검머가 언론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말하면서, 광우병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기'에 대한 관점을 바꾼 것이 아니라 '언론'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We don’t want to scare people because it is an extremely rare disease. Not everyone is going to die from it,” Mr Smith said. “In fact I would tell people to worry more about their driving than getting CJD.”

"우리는 사람들이 겁먹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병은 매우 희귀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병으로 죽는 건 아닙니다. 사실, 전 사람들에게 CJD를 걱정하기보다 운전을 더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자신의 딸이 vCJD로 인해 사망했음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좀 놀랍습니다.

@ 사족이지만, 위 이야기는 3마리의 광우병 소가 발견된 미국이 아니라 183,823마리의 광우병 소가 발견되었고, vCJD와의 연관성을 모르는 채 신경계고 내장이고 고스란히 먹었던 영국의 이야기입니다.

2008/04/25 11:35 2008/04/25 11:35

양자역학과 결정론

alankang:21세기 결정론자를 읽고 씁니다.

alankang님이 양자역학에 근거한 반론을 방어하기 위해 제시하신 사고 실험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물리학자가 어떤 물리적 대상을 관찰하고 있다.
  2. 물리학자는 원하는 자신이 횟수만큼 그 대상을 관찰하여 물리량을 얻어낼 수 있다.
  3. 물리학자는 환원적으로 그 대상의 내부를 분석하지 않고서 물리량이 규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가?

Version 3의 물리학자는 Version 1의 수학자와 마찬가지로 주어진 시스템(시공간) 안에 갖힌 상태에서 시스템의 물리량을 측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해당 시스템이 결정론적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논증은 양자역학에 기반한 반론을 벗어날 수 없다고 봅니다.

코펜하겐 해석

양자역학에 대한 해석중에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해석은 코펜하겐 해석입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입자들은 파동함수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이 파동함수는 입자가 특정한 상태에서 발견될 확률을 알려줍니다. 이 입자에 대한 측정이 이루어지게 되면, 파동함수는 가능한 여러 상태들 중 하나로 붕괴collapse 하게 됩니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이러한 붕괴가 객관적으로 확률적인(objectively probabilistic) 과정입니다. 즉, 겉으로 보기에 우연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완전한 우연입니다.

우리가 보통 경험하는 우연의 경우에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따져 들어가면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설사 예측이 불가능한 시스템이더라도 내부에는 결정론적인 인과관계가 작용한다는 것을 보통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연은 주관적 우연이죠.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그 내부 기작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우연이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라늄 원자 딱 하나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이 원자가 1초후에 붕괴할지, 10만년 후에 붕괴할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붕괴할 확률만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측정 여부와 상관없이 물리적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아인슈타인은 이런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회마다 보어와 논쟁을 벌였으며, 매번 기발한 사고실험을 고안하여 양자역학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태도는 그의 편지에 남아있는 다음 문장이 (흔히 'God does not play dice'로 일컬어지는) 잘 보여줍니다.

Quantum mechanics is certainly imposing. But an inner voice tells me that it is not yet the real thing. The theory says a lot, but does not really bring us any closer to the secret of the Old One. I, at any rate, am convinced that He does not throw dice.


숨은변수이론 (hidden variable theory)

그래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숨은변수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우리가 보고 있는 입자들이 어떤 '내부상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상태를 기술하는 어떤 변수에 의해 그 입자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가정을 합니다. 우리가 측정할때 확률적으로 보이는 과정들도 모두 숨어있는 변수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는 이론입니다.

그리고, 숨은변수이론중에서도 '국소적 숨은변수이론 (local hidden variable theory)'는 멀리 떨어져 있는 입자들 간에 빛보다 빠른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다는 조건을 넣은 이론입니다.


EPR paradox

1935년에 아인슈타인은 포돌스키, 로젠과 더불어 EPR (Einstein-Podolsky-Rosen) 역설이라는 사고실험을 제안합니다. 이 논문은 양자역학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 것처럼 보였으며, 아인슈타인의 날카로운 공격을 모두 방어해내던 보어도 자신있게 반박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고 실험은 양자역학에서 양자얽힘 (quantum entanglement) 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험입니다.

후에 좀 더 깔끔하게 다듬어진 EPR 실험에서는 각운동량을 가지지 않은 하나의 입자가 각운동량을 가지는 두 개의 동일한 입자로 붕괴됩니다. 이 두 입자는 up 스핀이나 down 스핀을 각각 가질 수 있지만 전체 각운동량이 보존되어야 하므로 하나의 입자가 up 이라면 다른 입자는 down 스핀이 되어야 한다는 제약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에 의하면, 우리가 측정하기 전까지 이 두 개의 입자는 up과 down 두 상태가 중첩된 상태에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두 입자가 100km 정도 떨어져 있을 때 하나의 입자의 스핀을 측정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이 입자의 스핀이 정해지는 바로 그 순간, 다른 입자의 스핀도 정확히 정해지게 됩니다. 이 상황은 마치 100km의 거리를 무시하는 순간적인 상호작용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매우 이상하죠. 반면, 숨은변수이론이 맞다면, 입자들은 생겨날 때 자신이 어떤 방향의 스핀을 가지게 될 지를 결정하게 되고,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두 입자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없으므로 자연스럽습니다.

그럼 아인슈타인이 옳았을까요?

벨의 정리

John S. Bell이라는 물리학자는, 놀랍게도, 양자역학의 예측을 모두 설명하는 국소적 숨은변수이론이 존재할 수 없음을 증명해냈습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이 정리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No physical theory of local hidden variables can ever reproduce all of the predictions of quantum mechanics.

다시 말하면, 어떤 양자역학의 예측 A가 존재하는데, 이 A는 그 어떤 국소적 숨은변수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걸 다시 말하면, 실험을 수행했을때 양자역학이 예측한 결과가 나온다면 모든 국소적 숨은변수이론을 내다버릴 수 있는 그런 실험을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결정론적 해석인 숨은변수이론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실험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벨의 정리는 '벨 부등식'이라는 통계적인 상관관계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부등식으로 표현됩니다. 이 부등식은 양자역학이 옳다면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이후 여러가지 변형들이 발표되었으며, 숨은변수이론의 예측과 양자역학의 예측이 정반대의 결과를 내놓게 되는 GHZ state (Greenberger-Horne-Zeilinger state) 라는 양자역학적 상태도 제시되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지금까지 행해진 실험은 모두 양자역학(코펜하겐 해석)을 지지합니다. 양자얽힘현상은 양자정보학에서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즉, 현재까지 인류가 밝혀낸 바에 의하면, 어떠한 국소적 숨은변수이론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따라서, 이런 이유로 저는 결정론자가 아닙니다. :)

2008/01/14 00:55 2008/01/14 00:55

미국 쇠고기 얼마나 위험한가 - 2


이정환:미국 쇠고기와 언론의 여론 조작을 보고 미국 쇠고기 얼마나 위험한가라는 글을 썼습니다. 뒤이어 올라온 인간 광우병에 대한 짧은 언급이라는 글을 보고 저도 다시 씁니다.

먼저 제가 썼던 글의 논지를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1. 광우병에 걸린 수만 마리의 소가 유통된 영국에서도 vCJD의 발병은 극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2. 비슷한 질병인 쿠루의 사례에서 보면, 지금 보이는 데이터만 가지고 vCJD의 파괴력을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3. 하지만 쿠루의 경우를 보면 잠복기가 매우 긴 사람들의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았으며, 따라서 다른 근거가 없는 한, 미래에 일어날 vCJD의 재유행을 심하게 걱정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4. 설사 영국에서 계속 살아 왔더라도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아 보입니다.
  5. 따라서, 미국에서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도 거의 '0'이며, 한국에서 미국 쇠고기를 통한 인간광우병을 걱정하는 것은 더더욱 기우에 가깝다고 봅니다.

예방 우선의 원칙

정태인님의 정리를 보았지만 저에게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 증명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 건강과 환경 정책은 '예방우선의 원칙'을 적용합니다. 즉 먼저 규제하는 것이죠. 그러나 미국식 FTA는 증명하지 못하면 수입하라는 겁니다. 어떻게든 FTA를 맺으려고(별 뚜렷한 이유도 없이) 다른 나라는 감수하지 않는 위험을 축소하려는 게 문제입니다. 잘 모르겠으면 우선 금지시키는 게 맞겠지요. 어떤 규제든 그것이 필요불가결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라', '못하면 수입규제'라고 하는 것이 무역/경제를 생명보다 우위에 놓는 미국식 FTA의 기본 발상입니다. --정태인

무언가를 '증명'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예를 들어,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를 인간이 먹으면 vCJD에 걸릴 수 있다는 가설은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지만, 아직도 증명된 사실이 아닙니다.

'예방 우선의 원칙'은 그럴듯하지만, 그 자체로는 공허합니다. 위험의 정도에 대해 완벽한 무지가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경우, 대강의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추정을 바탕으로 적절한 선에서 예방을 할 수 있습니다. 균형추는 물론 '예방'쪽으로 더 쏠려야 합니다만, 지나치게 예방을 강조하면 엄청난 비용이 허공으로 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항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무서운 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입국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예방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특별한 전염병 위험이 없는데도 입국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심각한 검사를 하고 방역작업을 하는 것은 삽질입니다. 또다른 예로, "한국에서 테러가 일어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이슬람 교도들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자"는 정책은 어떨까요? 종교차별 문제를 뒤로 밀어놓더라도, 위험에 비해 너무나 큰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한심한 정책입니다. 이렇게 별로 큰 위험이 아닌데도 '예방 우선의 원칙'을 내세워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 건 넌센스입니다.

완전히 무지한 경우에는 예방 우선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위험도를 대강이라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방은 이렇게 추정된 위험도를 바탕으로 적절한 안전선을 정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완벽한 예방만을 강조할 경우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비용은 또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습니다.

광우병의 위험

결국 문제의 핵심은 '미국 쇠고기가 가진 광우병 위험이 얼마나 되는가'입니다. 증거로 뒷받침되는 '추정'을 제시하지 않은 채로, '증명 불가능하니 예방우선의 원칙을 적용해서 수입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교묘한 수사이며 옳지 않습니다. 이미 지난글에서 광우병의 위험이 거의 없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제가 든 근거나 주장중에 특별히 반박이 이루어진 부분은 없지만 추가 자료와 함께 다시 한번 정리해봅니다.

우리에게는 광우병에 대한 많은 데이터가 있으며, 이 데이터를 통해 어느정도 위험에 대한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저번 글에서 영국의 예를 통해 보여드렸던 것처럼, (30년 이상의 긴 잠복기를 가지는 또다른 창궐이 없다면) 그 위험은 너무나도 작습니다. 아마 번개에 맞을 확률조차도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입니다. 게다가 잠복기가 매우 길어 나중에 대단위의 창궐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미약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를 지지하는 증거들이 존재합니다. 첫째로, 쿠루의 경우, 잠복기가 매우 긴 사람들의 비율이 미미합니다. 둘째, 광우병의 잠복기는 평균 5년인 반면, 인간광우병의 추정 잠복기는 12~15년으로 이미 소의 2배에서 3배에 이릅니다. 셋째로, vCJD환자의 수가 다시 증가하려는 경향이 아직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만일 지금 바로 또다른 창궐이 일어난다고 해도, 30년 이상의 잠복기를 가졌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광우병의 위험이 매우 작다는 것은 그 전에 이루어졌던 동물실험을 통해서도 지지됩니다.

왜 종간 장벽이 있어서 프라이온이 다른 생물종 사이에는 잘 전염되지 않고 같은 종 사이에서는 쉽게 전염될까? 왜 입으로 섭취할 경우에는 잘 전염되지 않지만, 뇌에 직접 주사를 하면 더 쉽게 전염될까? --p. 333

... 뇌 추출물을 뇌로 직접 투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의 스크래피병을 다른 종에게 옮기기 아주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보였다. 엄청난 양이 아니면 음식을 통해 사람의 프라이온으로 원숭이를 감염시키는 것도 불가능한데 소와 사람의 차이는 원숭이와 사람간의 차이보다 훨씬 더 심하다. 뇌에 주사를 하는 경우가 섭취를 통한 경우보다 감염의 위험도가 약 1억 배나 더 높다고 추정되었다. --p. 337, Matt Ridley, Genome

이렇게, 저는 프리온병이 이종간에서, 입으로 섭취하여 전염되기는 정말 어렵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정환님이 쓰신

0.001g만으로도 인간 광우병을 옮길 수 있다.

라는 발언의 근거자료가 궁금합니다. '옮길 수 있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확률'입니다. 만약 저렇게 적은 양을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인간광우병에 쉽게 걸린다면, 영국은 이미 세계사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광우병이 걸린 소 한 마리는 5만5천마리의 소에 광우병을 감염시킬 수 있다. --이정환

이 문장도 의문입니다. 광우병에 걸린 소가 다른 소를 감염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소가 먹는 사료가 되는 경우 뿐이며, 이는 이미 90년대 초에 모두 금지되었습니다. 따라서 이건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위험을 과장하여 공포를 조장하는 발언입니다.

자연적으로 발병하는 광우병

인간의 경우, 전에 썼던 것처럼, CJD라는 희귀병은 저절로 발병할 수 있습니다. 이 병은 백만 명당 한 명꼴로 몹시 희귀하지만, 영국에서조차 vCJD보다는 훨씬 흔합니다. 소의 경우에도 광우병과 똑같은 증세를 보이는 병이 옛날에도 관찰된 일이 있으며, 소라고 이런 형태의 광우병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광우병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유력한 이론이 존재합니다. 첫번째는 양에 존재하는 프리온병인 스크래피가 사료로 쓰이게 되어 소로 옮겨졌다는 가설이고, 두번째는 자연적으로 광우병에 걸린 소가 사료로 쓰여 광우병이 퍼지게 되었다는 가설입니다. 종간 감염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볼 때,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가설이 더 유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설이 옳을 경우, 미국에서 발병한 광우병은 이러한 자연적 발병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키우는 소는 대략 1억 마리에 이릅니다. 인간의 경우보다 소의 경우에 이런 자연적 광우병 발병확률이 1/100정도라고 낮추어 가정해도 1억 마리 중에 한 마리 정도는 자연적인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기네 소를 잘 먹고 있는 미국과 영국

지난 기사를 내보내고 많이 받았던 질문은 역시 미국 사람들 다 먹는 쇠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는 것. 박 국장은 "영국에서는 광우병으로 160명 이상이 죽었는데 여전히 영국산 쇠고기를 먹는다"고 지적했다. 자기네 나라 쇠고기니까 어쩔 수 없이 먹는다는 이야기다.

사실 미국 사람들이 다 잘 먹고 있다는 주장은 매우 강력한 논거이며, '자기네 나라 쇠고기니까 어쩔 수 없이 먹는다'는 건 이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논거입니다. 영국인들이 영국산 쇠고기를 먹는 이유는, 지금까지 광우병에 걸렸다고 밝혀진 전체 소의 98%인 183,823마리의 소가 영국소임에도, 광우병으로 12년 동안 160명밖에 죽지 않았기 때문이며, 12년 동안 수백만명을 죽인 다른 병이나 다른 사인들에 비하면 그 위험성이 턱없이 작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18만 마리의 광우병 사례를 가지고 있는 영국과 비교할때, 단 2마리의 광우병 사례를 가진 미국 소를 통한 광우병을 걱정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영국이나 미국을 비롯해 광우병 위험 국가에서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는 것은 세계적인 상식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인간광우병은 매우 긴 잠복기, 병의 예후, 그리고 소가 소를 먹어서 걸린 병이라는 으스스함등으로 인해, 실제 위험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의 공포를 유발시키는 병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광우병 위험 국가에서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는다는 건 그러한 비합리적 공포를 보여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조류 독감이 발생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닭고기를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류독감에 걸린 닭이라도 70도 이상의 온도로 몇 분정도 익혀먹으면 위험이 없습니다. 게다가 잠복기가 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조류독감이 발생해도 얼마든지 걱정없이 닭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광우병의 경우에도 워낙 확률이 작기 때문에 거의 위험 없이 먹을 수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어쩔 수 없이 먹는다기보다는 실제로 그만큼 안전하기 때문에 먹는 것입니다. 과연 최고의 생물학자들을 보유한 미국이나 영국에서, 위험한 쇠고기를 국민들이 어쩔 수 없이 먹도록 만들까요? 적어도 18만 마리의 소가 감염된 것으로 판명되었고, 40만 마리에 이르는 소가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사람들의 식탁에 올라갔고, 4백만 마리가 넘는 소를 도살했으며, 160건 정도의 vCJD 발병사례가 있는 영국에 사는 매트 리들리는 영국이 취했던 조치들이 '과했다'고 까지 말합니다.

추가로 10만 마리의 소를 도살할 것을 명하였다. 이것은 너무 지나친 행위로, 마치 마굿간에 빗장을 건 후 다시 한 번 문을 걸어 잠그는 정도가 아니라 그 바깥에서 희생양을 올리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p. 338, Matt Ridley, Genome.

적어도 18만 마리의 소가 감염된 것으로 판명되었고, 40만 마리에 이르는 소가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사람들의 식탁에 올라갔고, 4백만 마리가 넘는 소를 도살했으며, 160건 정도의 vCJD 발병사례가 있는 영국에 사는 사람들은 영국 쇠고기를 잘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작 2마리의 소, 자연적인 발병일 수도 있는, 가 발견된 미국의 소고기가 얼마나 위험할까요?

참고로 미국은 약 20년전부터 광우병을 모니터링해 왔습니다. 전에 링크한 모기불통신의 광우병 검사라는 글을 보면 미국에서 광우병 검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2004 년에 미국농림부에서 내놓은 자료 에 따르면 268,000 마리를 샘플링해서 검사하면 천만마리중에 한마리가 광우병에 걸렸더라도 99% 의 신뢰도로 잡아낼 수 있다고 하는군요. ("Under the enhanced program, using statistically geographic modeling, sampling some 268,000 animals would allow for the detection of BSE at a rate of 1 positive in 10 million adult cattle with a 99 percent confidence level. In other words, the enhanced program could detect BSE even if there were only five positive animals in the entire country.")

당신의 가족에게도 먹일 수 있는가?

물론입니다. 고기를 먹으면서 광우병을 걱정하는 것보다는 고기가 상했을지를 걱정하는게 뱅만배 실용적이고, 광우병을 걱정하기보다는 비만을 걱정하는게 뱅만배 실용적입니다. vCJD를 걱정하기보다는 차라리 CJD를 걱정하는게 더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미국과 캐나다는 물론이고, 미국보다 수백배 많은 소가 광우병으로 죽은 프랑스, 독일등지에서도 소고기를 맛있게 먹었으며, 또 가더라도 거부감 없이 쇠고기를 먹을 것입니다.

결론

마지막으로 매트 리들리의 글을 좀 길게 인용합니다. 광우병의 위험이 절정이었던 1999년 즈음에 영국에서, 영국사람이 쓴 글입니다.

1988년 7월에 이르러서는 반추동물에게 사료를 주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 1988년 8월에 이르러 사우스우드 위원회는 광우병에 감염된 가축들은 모두 없애버려 먹이사슬에 들어오지 못하게 법률을 제정할 것을 권고하였다. ... 소의 뇌가 사람의 먹이사슬에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특정 소내장 금지법이 1년 후에 선포되었고, 1990년에는 송아지의 경우에도 금지되었다. 이 법의 시행이 좀더 빨리 이루어질수도 있었지만, 뇌 추출물을 뇌로 직접 투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의 스크래피병을 다른 종에게 옮기기 아주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보였다. 엄청난 양이 아니면 음식을 통해 사람의 프라이온으로 원숭이를 감염시키는 것도 불가능한데 소와 사람의 차이는 원숭이와 사람간의 차이보다 훨씬 더 심하다. 뇌에 주사를 하는 경우가 섭취를 통한 경우보다 감염의 위험도가 약 1억 배나 더 높다고 추정되었다. 이 단계에서 쇠고기를 먹는 게 안전하지 않다고 하면 오히려 무책임한 처사이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섭취에 의한 종간의 감염은 수십만 번의 동물 실험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정도이므로, 사실상 위험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실험대상은 바로 5000만명에 이르는 영국인이었다. 이렇게 큰 표본집단에서는 몇몇 경우가 생기는 것이 필연적이다. 정치가에게 안전상의 문제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다. 이들은 사람에서는 감염이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다. ...

1992년 이래로 태어난 가축들은 거의 광우병에 걸리지 않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의 히스테리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제 정치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결정들이 점차 광적인 상태로 바뀌었다. 내장금지법 덕분에 쇠고기는 최근 10년간의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제서야 쇠고기를 보이코트하기 시작했다.

... 영국에서는 수백만 명이 죽게 될 것이라는 황당한 예측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

영국 정부는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의 소비를 금지하는 쓸모 없는 추가적인 대응책을 내놓았고 이로 인해 대중적 경각심은 더욱 커져서 축산업 전체가 붕괴되었으며 도살될 가축들로 시스템이 마비되었다. ...


... 나의 경우에는 금지령이 확대된 이후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소꼬리찜을 먹고 있다. 

--pp.336-339, Matt Ridley, Genome.

물론 매트 리들리씨는 (아직은?) 멀쩡하십니다.

참고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7/10/23 01:04 2007/10/23 01:04

미국 쇠고기 얼마나 위험한가


이정환 님이 쓰신 미국 쇠고기와 언론의 여론 조작을 읽고 씁니다. 제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 주제넘게 쓰는 글이니 틀린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정환님은 '미국산 쇠고기 위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라고 쓰셨지만, 저는 세상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위험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위험은 그 위험에 맞게 강조되어야 합니다. 전혀 위험하지 않은 위험을 과장하면 훨씬 더 중요한 일들에 쓰일 노력이 낭비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인간광우병은 치명적인가?

먼저, vCJD(variant Creutzfeldt-Jakob disease, 인간광우병)가 매우 치명적인 병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직 마땅한 치료법이나 병의 진행을 늦추는 방법이 제시되지 못했으며 일단 발병하면 거의 확실하게 사망하게 됩니다. 최근에 RNA interference를 이용한 억제법이 제시되긴 했지만, 인간에게 적용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입니다.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vCJD에서 'v'라는 글자는 '변종'을 의미하며, CJD는 vCJD의 발견 이전에도 존재하던 병입니다. CJD는 대단히 희귀한 질병입니다. 백만 명당 한 명 꼴로, 60~65세 정도의 사람들게 보통 발병합니다. 백만 명당 한 명이라는 건, 로또 일등 확률에 근접하는 확률이며, 왠만한 병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확률입니다. 영국의 경우 CJD로 인해 매년 수십 명 정도의 사람들이 죽습니다. (The National Creutzfeldt-Jakob Disease Surveillance Unit - CJD Statistics)

현재까지의 데이터로만 본다면, vCJD는 희귀병인 CJD보다도 훨씬 드문 병입니다. 영국에서는 지금까지 18만 마리 이상의 (소)광우병 발병 사례가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기에 많은 소가 영국인들의 식탁에 올라왔음에도, 인간광우병에 걸려 죽은 사람의 수는 (확실하지 않은 사례를 포함하여) 12년 동안 고작 161명이며,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수는 5명입니다. 그리고 이 숫자는 전세계적인 인간광우병 발병 사례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영국 이외의 지역에서 인간광우병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손에 꼽습니다. 영국에서는 1988년 무렵부터 반추동물에서 나온 단백질을 반추동물에게 먹이지 않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모기불:광우병 검사) 이 정책으로 광우병 발병 건수는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이에 따라 조치시행 12년 후인 2000년 이후로 vCJD 발병건수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The National Creutzfeldt-Jakob Disease Surveillance Unit - CJD Statistics)

cjd.png

이렇게 vCJD는 엄청나게 걸리기 힘든 병이긴 하지만, 매우 비슷한 종류의 병인 '쿠루 (kuru)'가 50년에 이르는 긴 잠복기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바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John Collinge et al., Kuru in the 21st century—an acquired human prion disease with very long incubation period, The Lancet) 그러나, 쿠루의 경우, 대부분의 환자는 12년 정도의, 그렇게 길지 않은 잠복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30년 이상의 잠복기를 가졌던 환자의 수는 미미했습니다. 따라서 딱히 다른 근거가 없다면 앞으로도 vCJD 환자의 수가 지금까지의 환자 수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지는 않을 거라는 추측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병의 잠복기가 길 수록 다른 병들에 비해 vCJD의 위험성은 줄어들며, 우리가 치료법을 찾아낼 확률도 높아집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광우병에 걸린 수만 마리의 소가 유통된 영국에서도 vCJD의 발병은 극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2. 비슷한 질병인 쿠루의 사례에서 보면, 지금 보이는 데이터만 가지고 vCJD의 파괴력을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3. 하지만 쿠루의 경우를 보면 잠복기가 매우 긴 사람들의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았으며, 따라서 다른 근거가 없는 한, 미래에 일어날 vCJD의 재유행을 심하게 걱정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4. 설사 영국에서 계속 살아 왔더라도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아 보입니다.
  5. 따라서, 미국에서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도 거의 '0'이며, 한국에서 미국 쇠고기를 통한 인간광우병을 걱정하는 것은 더더욱 기우에 가깝다고 봅니다.

다른 전염병들과의 비교

페스트와 조류독감같은 병들은 공기를 통해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염되는 병입니다. 비행기를 통해 전세계가 연결된 현대의 좁은 세상에서는 대단히 위험할 수 있는 병들입니다. 매우 먼 지역까지 순식간에 병이 전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트워크 이론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렇게 잘 연결된 세상에서는 전염병을 없애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반면에, vCJD는 (식인 풍습이 없다면) 인간 -> 인간 전염이 불가능합니다. 즉, 병은 병의 원인에 노출된 사람들에게만 고립됩니다. 따라서 발견하기만 하면 상대적으로 쉽게 병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쿠루의 경우, 죽은 사람의 뇌를 먹는 풍습이 병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식인 풍습이 없어지면서 병은 급속히 사라졌으며 현재는 완전히 사멸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광우병을 페스트나 조류독감에 비유하는 것은 부절적한 비교이며, 광우병의 위험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위험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제가 가진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할 때, 한국에 수입된 미국 쇠고기가 광우병을 초래할 위험은 거의 없으며, "미국산 쇠고기가 국제적 기준에 비춰 현저한 위험이 있다는 것은 아직 없다"는 농림부 장관의 말에도 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또한 광우병의 위험성은 축소, 은폐되기보다는 과장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7/10/14 18:31 2007/10/14 18:31

침팬지의 최후통첩 게임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은 실험대상이 '공평함'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게임이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횡재에 얼마나 배아파하는지를 측정하는 게임이다. ㅎㅎ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메커니즘도 이타성의 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죄수의 딜레마처럼 많이 연구되는 게임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볼 수 없도록 다른 방에 격리되고 각각 제안자와 응답자로 역할이 주어진다. 두 사람에게는 특정한 액수의 돈이 주어지고 제안자의 제안에 따라 돈을 나누게 된다. 먼저 제안자가 마음대로 제안을 한다. 8:2, 5:5 처럼 제안을 할 수 있다. 이 제안은 응답자가 거부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다. 만약 응답자가 받아들이면, 제안자의 제안대로 돈을 나누어 갖게 되며, 제안을 거부하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다.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Homo economicus)의 관점에서는 제안이 어떻게 오든 간에, 자신의 몫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응답자는 제안을 수락하는 게 맞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제안자는 보통 절반 근처를 제안하며, 응답자는 20%정도만 자신의 몫이 되는 제안은 거부한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런 결과는 사람들이 '무임승차'에 상당히 민감하며, '공평함'을 중요하게 생각함을 보여준다. (경제학과 학생들이 좀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심리학과 학생들이 좀 더 '호혜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은 있다고 한다. ㅎㅎ)

이런 결과가 만들어내는 필연적인 의문 중 한 가지는 '인간만?'이다. 바로 며칠 전에 사이언스지에 출판된 논문이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논문은 침팬지를 대상으로 최후통첩 게임을 시행하여 침팬지들은 인간에 비해 '공정함'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훨씬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결과만큼 흥미로운 것이 실험방법이다. 이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양쪽 침팬지에게 게임의 규칙을 이해시켜야 한다. 제안자는 우선 8:2, 7:3 같은 제안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그 제안을 상대방이 수락하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 자신에게 얼마나 돌아오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응답자는 자신이 받은 제안의 의미를 바로 알 수 있어야 하며, 상대방의 제안을 수락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의사표현이 명확하게 가능해야 하고, 그 의사표현이 어떤 결과를 내는지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 논문에서는 이런 만만해보이지 않는 조건들을 꽤 간단한 기계장치로 구현했다.

먼저 자유로운 제안이 가능한 원래의 최후통첩게임의 규칙을 살짝 제한하여 제안을 두 가지로 압축했다. 제안자는 자신의 앞에 놓인 두 개의 로프중 하나를 선택하여 당김으로써 제안을 실행할 수 있다. 로프를 끝까지 당기면 '제안'의 손잡이가 응답자의 손이 닿는 위치까지 온다. 이제 응답자는 손잡이를 끌어당겨 자신도 먹이를 얻고 제안자도 먹이를 얻을 수 있도록 하거나, 아니면 손잡이를 당기지 않음으로써 제안을 무시할 수 있게 된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7/10/07 16:32 2007/10/07 16:32

'주목'에 대한 재미난 실험

일단 보시길. 볼륨은 줄이고.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들이 패스를 몇 번 하는지를 정확히 세야 한다. (via cognitive daily)
모두 놓치지 않으셨나요? ;)
2007/09/12 12:38 2007/09/12 12:38

엄청난 기술로 만든 쓸데없는 것들

남쪽계단님의 세상에서 제일 작은 것들을 보다가 Nanofabrication에 대한 학회에서 개최한 Bizarre/Beautiful Micrograph Contest를 발견했다. 놀라운 기술도 기술이지만 센스가 참...

Best Electron MicroGraphM. C. Escher Award 수상작들이 맘에 든다. 에셔 상 수상작은 보고있으면 왠지 오싹.
2007/09/05 19:42 2007/09/05 19:42

Statphys23 - P. Virnau

P. Virnau - Knots in Proteins

실 한가닥을 마구 뭉쳤다가 양쪽 끝을 잡고 당기면 당연하게도 매듭(knot)이 생긴다. 단백질 같은 작은 끈에서는 매듭이 우리 신발끈보다도 더 잘 생긴다.

그런데 실제 존재하는 단백질에는 매듭이 매우 드물다.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모든 단백질 중에 1%정도만이 매듭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가장 단순한 매듭들이다. 그리고 이런 매듭을 가진 단백질들은 모두 효소로 쓰인다고 한다. Virnau씨는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해서 PDB에 있는 단백질들이 가진 매듭을 찾아보았는데,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가장 복잡한 매듭을 찾았다고 한다1.

재미있는 건, 가장 복잡한 매듭을 가진 그 단백질이 하는 일이 매우 특별하다는 것이다. 그 단백질의 이름은 "ubiquitin hydrolase"인데, 단백질의 사망예고딱지인 ubiquitin을 분해하여 파괴되기 직전의 단백질을 구출하는 역할을 한다. 이 단백질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연구팀은 단백질을 분해하는 proteasome이 이 매듭을 잘 풀지 못해서가 아닐까라고 추측한다고 한다.

Ubiquitin은 어디에나(ubiquitous) 존재하는, '죽음이라는 숙명'이다. 하지만 저 복잡한 매듭을 가진 단백질은 그 풀 수 없는 매듭 덕에 이러한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1. 논문은 무료로 볼 수 있다. [Back]
2007/09/05 19:18 2007/09/05 1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