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쇠고기 얼마나 위험한가

14 Oct 2007


이정환 님이 쓰신 미국 쇠고기와 언론의 여론 조작을 읽고 씁니다. 제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 주제넘게 쓰는 글이니 틀린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정환님은 '미국산 쇠고기 위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라고 쓰셨지만, 저는 세상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위험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위험은 그 위험에 맞게 강조되어야 합니다. 전혀 위험하지 않은 위험을 과장하면 훨씬 더 중요한 일들에 쓰일 노력이 낭비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인간광우병은 치명적인가?

먼저, vCJD(variant Creutzfeldt-Jakob disease, 인간광우병)가 매우 치명적인 병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직 마땅한 치료법이나 병의 진행을 늦추는 방법이 제시되지 못했으며 일단 발병하면 거의 확실하게 사망하게 됩니다. 최근에 RNA interference를 이용한 억제법이 제시되긴 했지만, 인간에게 적용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입니다.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vCJD에서 'v'라는 글자는 '변종'을 의미하며, CJD는 vCJD의 발견 이전에도 존재하던 병입니다. CJD는 대단히 희귀한 질병입니다. 백만 명당 한 명 꼴로, 60~65세 정도의 사람들게 보통 발병합니다. 백만 명당 한 명이라는 건, 로또 일등 확률에 근접하는 확률이며, 왠만한 병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확률입니다. 영국의 경우 CJD로 인해 매년 수십 명 정도의 사람들이 죽습니다. (The National Creutzfeldt-Jakob Disease Surveillance Unit - CJD Statistics)

현재까지의 데이터로만 본다면, vCJD는 희귀병인 CJD보다도 훨씬 드문 병입니다. 영국에서는 지금까지 18만 마리 이상의 (소)광우병 발병 사례가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기에 많은 소가 영국인들의 식탁에 올라왔음에도, 인간광우병에 걸려 죽은 사람의 수는 (확실하지 않은 사례를 포함하여) 12년 동안 고작 161명이며,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수는 5명입니다. 그리고 이 숫자는 전세계적인 인간광우병 발병 사례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영국 이외의 지역에서 인간광우병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손에 꼽습니다. 영국에서는 1988년 무렵부터 반추동물에서 나온 단백질을 반추동물에게 먹이지 않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모기불:광우병 검사) 이 정책으로 광우병 발병 건수는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이에 따라 조치시행 12년 후인 2000년 이후로 vCJD 발병건수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The National Creutzfeldt-Jakob Disease Surveillance Unit - CJD Statistics)

cjd.png

이렇게 vCJD는 엄청나게 걸리기 힘든 병이긴 하지만, 매우 비슷한 종류의 병인 '쿠루 (kuru)'가 50년에 이르는 긴 잠복기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바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John Collinge et al., Kuru in the 21st century—an acquired human prion disease with very long incubation period, The Lancet) 그러나, 쿠루의 경우, 대부분의 환자는 12년 정도의, 그렇게 길지 않은 잠복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30년 이상의 잠복기를 가졌던 환자의 수는 미미했습니다. 따라서 딱히 다른 근거가 없다면 앞으로도 vCJD 환자의 수가 지금까지의 환자 수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지는 않을 거라는 추측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병의 잠복기가 길 수록 다른 병들에 비해 vCJD의 위험성은 줄어들며, 우리가 치료법을 찾아낼 확률도 높아집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광우병에 걸린 수만 마리의 소가 유통된 영국에서도 vCJD의 발병은 극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2. 비슷한 질병인 쿠루의 사례에서 보면, 지금 보이는 데이터만 가지고 vCJD의 파괴력을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3. 하지만 쿠루의 경우를 보면 잠복기가 매우 긴 사람들의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았으며, 따라서 다른 근거가 없는 한, 미래에 일어날 vCJD의 재유행을 심하게 걱정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4. 설사 영국에서 계속 살아 왔더라도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아 보입니다.
  5. 따라서, 미국에서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도 거의 '0'이며, 한국에서 미국 쇠고기를 통한 인간광우병을 걱정하는 것은 더더욱 기우에 가깝다고 봅니다.

다른 전염병들과의 비교

페스트와 조류독감같은 병들은 공기를 통해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염되는 병입니다. 비행기를 통해 전세계가 연결된 현대의 좁은 세상에서는 대단히 위험할 수 있는 병들입니다. 매우 먼 지역까지 순식간에 병이 전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트워크 이론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렇게 잘 연결된 세상에서는 전염병을 없애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반면에, vCJD는 (식인 풍습이 없다면) 인간 -> 인간 전염이 불가능합니다. 즉, 병은 병의 원인에 노출된 사람들에게만 고립됩니다. 따라서 발견하기만 하면 상대적으로 쉽게 병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쿠루의 경우, 죽은 사람의 뇌를 먹는 풍습이 병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식인 풍습이 없어지면서 병은 급속히 사라졌으며 현재는 완전히 사멸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광우병을 페스트나 조류독감에 비유하는 것은 부절적한 비교이며, 광우병의 위험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위험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제가 가진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할 때, 한국에 수입된 미국 쇠고기가 광우병을 초래할 위험은 거의 없으며, "미국산 쇠고기가 국제적 기준에 비춰 현저한 위험이 있다는 것은 아직 없다"는 농림부 장관의 말에도 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또한 광우병의 위험성은 축소, 은폐되기보다는 과장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