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 존 검머 2

12 May 2008


deulpul님의 글, 존 검머 이야기을 보고 씁니다. (출국 준비 관계로 심한 뒷북을 칩니다. ^^;; )

제 글의 의도

광우병의 공포를 과장하는 분들은 존 검머와 엘리자베스의 극적인 일화를 인용하며 ‘광우병은 무척 위험하며, 그걸 무시한 댓가는 존 검머와 엘리자베스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엘리자베스 본인은 죽어가면서도 언론에게 대중을 선동하지 말라고 부탁했으며, 그녀의 부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즉, 이 사건의 주인공들은 이 사건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발언을 계속 해왔으며, 이러한 사실은 언론이나 미국 쇠고기 수입을 강하게 반대하시는 분들에 의해 인용될 때에는 항상 생략되었습니다.

제가 지난 번에 썼던 글, 영국 농림부 장관 존 검머는 바로 이런 역설을 지적하기 위해 쓴 글이며 그 이상을 내포한 글은 아닙니다.

(사족인데, 희생자 가족들을 비롯하여 영국 국민들이 존 검머를 비난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라고 생각해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만 deulpul님이 지적하신 것과 같은 오독의 여지가 있긴 있겠군요. 그리고, deulpul님의 글을 읽으며 들었던 의문점은, 정말 스미스 부부와 엘리자베스의 행동이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hadream님이 썼던 글을 보고 기사를 찾아 읽은 후, 그들의 행동이 저의 무의식적인 기대를 배반하여 꽤 놀랐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검머의 극적인 쇼와 딸의 고통을 직접 보고서도 그렇게 이성적으로 대처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안전에 대한 과장과 위험에 대한 과장

deulpul님은 존 검머 사건에 대한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주셨고, 그것을 바탕으로 위험에 대한 과장뿐 아니라, 안전에 대한 과장이 위험하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중요한 지적이며, 위험이 매우 과장되어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제 입장에서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고 봅니다.

이 사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상식적 교훈은, 현재 실체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고 진행중인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I can assure 할 수 없으며, 누구도 자만할 수 없으며, 누구도 다른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질 수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질병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란 현재적 지식일 수밖에 없으므로,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서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실험실 안에서도 그래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발언에서는 훨씬 더 보수적이어야 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판단과 세일즈는 바로 불필요한 희생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한 부분은 당위에 가깝습니다. ‘얼마나’ 보수적이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겠지만, 파괴적 결과가 있을지도 모르는 경우에는 위험 요소가 작아보여도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낫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일 것입니다.

그런데, deulpul님은 이러한 원론적 이야기와 우리의 무지에 대한 단정을 바탕으로 한쪽 주장을 정당화하고 계시며, 저는 이러한 논증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몰랐으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 바로 이 점이 핵심이다. 현재 인간광우병은 그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조차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 혹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알려지지 않은 실체를 놓고 조금씩 그림 맞추기를 하며 전체 모습을 파악하려 애쓰는 중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필연적으로 다양한 견해, 다른 주장들이 혼재되어 있다. 의료과학계에서도 말이다.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모르고 있을까요? 우리의 현재 지식에 대한 논의가 없는 채로,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 혹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며, 공허합니다. 물론 광우병의 원인이 프리온인지 아닌지조차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등, 광우병에 대한 연구에 다양한 견해들이 혼재되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로부터 우리가 위험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없음이 당연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대단히 많은 BSE 발병사례를 가지고 있는 영국의 통계를 가지고 있으며, 많은 연구자들이 상당한 사실들을 밝혀내었습니다. 수십년간 쌓인 우리의 지식을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한마디로 일축하는 것은 무지에 대한 과장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가 자명하지 않은가. 제2의 존 검머들이 나와, 그 때는 어쩔 수 없지 않았냐,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하는 소리를 뒤늦게 일삼는 꼴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deulpul님의 결론은 자명하지 않습니다. deulpul님은 광우병의 과거 통계 자료, 수많은 연구 결과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신 채로, 우리가 ‘얼마나’ 모르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도 전혀 제시하지 않으신 채로,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위험은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당위명제와 미국의 경우와는 상이한 영국의 경우를 바탕으로 ‘자명하다’는 결론을 너무나 쉽게 내리고 계십니다. 정부의 협상 과정, 결과, 그리고 이후의 조치에서 야매성이 풀풀 풍겨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식의 논리에는 동의하기가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