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미국에서 정치학 교수로 재직중인 데니스 하트씨가 기고한 ‘오렌지’나 ‘어륀지’나 미국인에겐 똑같습니다 를 읽었습니다.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제가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은 일제 식민 통치기간 중 한국 사람들의 끊임없는 저항, 특히 모국어를 지키려는 투쟁이었습니다. 저의 은사님 한 분이 “식민 통치자로서 일제는 폭군이었지만 아주 민완한 폭군이었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일제는 한국어를 없애면 장기적으로 한국인의 정체성도 말살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한국학을 강의할 때 저는 한국인들이 외세에 맞서 나라를 지킨 투쟁을 강조합니다. 미국 학생들에게 이제 뭐라고 할까요? 일제의 한국어 말살 정책에 목숨 바쳐(이명박 당선인은 “받쳐”라고 하겠지만) 싸웠던 한국인의 후손들은 이제 자발적으로 모국어를 버리고 미 제국의 언어를 배우는 데 몰두하고 있다고 할까요?
이 부분을 읽다보니 얼마전에 보았던 책,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이 생각났습니다. 이 책은 사멸 위기에 처한 다양한 언어들을 소개하고, 언어가 어떻게 사멸하는지를 설명하며, 왜 우리가 이런 언어의 사멸을 걱정해야 하는가를 논한 책입니다.
![]() |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지음, 김정화 옮김/이제이북스 |
저자들은 언어 소멸의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첫째는, 그 말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 둘째는, 자신들의 말보다 다른 말을 쓰는 편이 이익이 된다고 여겨 언어가 교체되는 것, 세번째는 언어가 공적인 영역에서 밀려나 가정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만 쓰일 때, 혹은 그 정반대의 경우에 일어나는 자발적인 사멸입니다. 언어의 사멸에 대한 저자의 관찰 중 흥미로운 부분은 언어의 사멸이 언어의 강제보다는 자발적인 언어의 포기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배 집단들이 소수 집단을 강제로 와해시킨 경우는 많았다. 여기에 동원된 수단 중 하나가 지배 집단의 언어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고약한 정책의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 상징적인 저항과 결사의 징표로서 그 언어의 가치를 더 높여 주기도 한다. …
언어를 직접 겨냥한 정책이 아니라, 토착민의 경제적 역할에 대한 정책들이 소수 언어를 사멸시킨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 언어를 겨냥한 정치적 행위들은 실패로 끝나기가 쉽다. 반면 경제적, 사회적 영역의 주요 물자들은 손에 넣고 통제할 수가 있다.
–p156,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