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2008/08/06 12:37

김우재:산모기와 집모기에 의한 가려움증의 차이에 대하여를 읽고 씁니다.

우재님이 '숙주와 기생체의 상호작용이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숙주에게 독성이 강한 기생체의 비율이 줄어들게 된다'라는, 전염병학의 통념이 최근에 도전을 받고 있다는 언급을 하셨습니다. 마침 저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이고, 게다가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책도 관계가 깊어 이에 대해 조금 써 보려고 합니다 (더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는 전문가이신 byontae님의 블로그에서 ㅎㅎ).

전염병 시대 - 8점
폴 W. 이왈드 지음, 이충 옮김/소소

이 책의 도입부에서는 왜 이러한 통념이 틀렸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통념은 '숙주에게 심한 해를 입히거나 죽이게 되면 전파가 힘들어지므로 독성이 약해지는 방향으로 공진화한다'는 생각을 깔고 있는데,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이 상당히 순진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선택압이 병원체에게 작용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편견을 버리고 실제 병원체가 맞닥뜨리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두 종류의 시험

The strategic options can be envisioned as a competition that is played out in two contests. The first contest occurs within the host, where the favored competitors are those that most effectively use the host as food for their own reproduction. The second contest is played out in the transmission of pathogens to new hosts; those pathogens hat have been successful at growing within hosts are now in competition to reach the remaining uninfected members of the society. ...

These two contests require different talents. ...

병원체는 대략 나눠봤을때, '숙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이후 '다른 숙주로의 전파'라는 시험까지 통과해야만 비로소 성공한 병원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시험이 요구하는 자질은 다릅니다. 첫번째 시험은 보통 활발한 복제능력, 숙주의 자원을 최대한 쥐어짜는 능력을 요구하는 반면, 두번째 시험은 보통 숙주가 다른 숙주를 감염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을 요구합니다. 간단한 예로, 어떤 병원체의 변종이 숙주를 최대한 이용하는데 성공하여 많은 자손을 남기고 다른 병원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숙주를 죽게 만들거나 가만히 누워있게 만들어 다른 숙주로의 이동이 불가능해졌다면, 이 변종은 완벽한 실패로 끝난 것입니다. 역으로 아무리 다른 숙주로 잘 옮겨가는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숙주안에서 다른 변종에게 도태된다면 이 역시 실패작입니다.

첫번째로 든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병원체의 독성이 약해진다는 통념을 지지하는 논리로 보입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병원체가 숙주를 죽이거나 심하게 앓게 만들더라도 다른 숙주로 이동할 방법만 존재한다면 병원체의 입장에서는 숙주의 건강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도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의 역사에서 맹위를 떨쳤던 병들은 대부분 이렇게 숙주가 죽거나 심하게 앓아도 다른 숙주로 이동할 방법을 확보한 병원체가 일으킨 병들입니다.

의학이 일궈낸 그 어떤 진보도 상하수도 시스템의 정비만큼 많은 목숨을 살리지는 못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물을 통해 전파되는 수인성 전염병은 많은 사람들을 죽여왔으며, 지금도 개발도상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사망 원인 4위가 설사입니다).

Cholera

가장 유명한 병은 콜레라인데, 20세기 중반까지도 맹위를 떨치며 한 번 발생할때마다 수천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을 죽이곤 했습니다. 콜레라에 걸리면 콜레라균이 다량 함유된 설사를 계속해서 하게 되어 탈수를 일으킵니다. 설사로 오염된 물은 몸 밖으로 나온 콜레라균을 다른 숙주에게로 운반해줍니다. 한 명의 설사로 오염된 물은 수만 명을 감염시킬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숙주가 살아남았는지는 콜레라균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숙주가 최대한 많은 설사를 생산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콜레라균은 치명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폴 이왈드는 2007년 TED talk에서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들을 제시해줍니다.

그의 설명처럼, 수인성 전염병의 독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선택압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물 - 전염병을 매개하는 고리를 끊는 것 - 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기

모기나 다른 살아있는 매개체의 경우에도 비슷한 논리가 성립합니다. 숙주가 심하게 아파서 아무와도 만나지 못한채 누워만 있더라도, 모기가 쉽게 병원체를 옮겨줄 수 있습니다. 더 나쁜 것은, 아파서 앓아 누운 환자가 모기에게는 더 쉬운 사냥감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숙주가 더 심하게 앓게 만드는 방향의 선택압이 작용할 수도 있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매년 백 만명 이상을 죽이는 치명적인 질병인 말라리아입니다. 말라리아 역시 매개체인 모기를 막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일 수 밖에 없습니다.

병원성 전염병

병원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간호사나 의사들이 병원체를 옮기는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철저한 위생상태를 유지한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실제로 모두가 청결함을 완벽하게 유지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간호사나 의사가 일단 매개체로 기능하기 시작하면, 모기가 옮기는 병의 경우처럼 병원체는 숙주의 건강에 신경 쓸 이유가 줄어들게 되고, 따라서 치명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기 쉬워집니다.

천연두, 결핵

천연두나 결핵은 조금 다른 경우입니다. 이들은 숙주이외의 매개체가 존재하여 병원체를 운반해주기 보다는 자신들의 터프함으로 건강한 숙주가 자신을 흡입할 때까지 숙주의 몸 밖에서 버팁니다. 천연두의 경우가 특히 강하죠 (영화로 만들어질만 하죠. ~_~).

No one knows exactly how long it can last in the external environment. In one study smallpox scabs were stored in an envelope that was left on a shelf in a lab cabinet. By sampling the scabs periodically, the researchers demonstrated viable viruses for thirteen years. They could not continue the study because thirteen years of testing had used up all the viruses in the envelope.

... Such durability explains why American Indians in the colonies of New York and Pennsylvania were decimated by smallpox. Lasting for a few days or weeks on the infamous smallpox-laden blankets distributed to American Indians from a colonial outpost would be difficult for most viruses, but not for a virus that could last more than thirteen years on a lab shelf. There were even more morbid consequences of this durability. In 1757, after French fores took over Fort William Henry in northeastern New York, their Indian allies began digging up English graves. They got the scalps they were after, but they also apparently retrieved smallpox viruses that were lying in wait in the corpses of those who had died from the disease.

결핵균은 몸 밖에서 수 주에서 몇 달 정도까지 살 수 있으며, 폴 이왈드는 이것이 바로 리팜핀 같은 결핵약이 등장하기 전에 결핵이 천연두 바로 아래에 위치한 치명적인 질병이었던 이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감기를 일으키는 병원체는 몸 밖에서 보통 몇 시간밖에 버티지 못한다고 합니다.

조류독감은 얼마나 위험할까

폴 이왈드는 이런 논의를 끌고 나가 조금 위험한(?) 주장 - '앞으로는 1918년의 스페인 독감같은 치명적인 독감의 대유행이 없을 것이다' - 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시간 나는대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2008/08/06 12:37 2008/08/06 12:37
by yy
category : Science

TRACKBACK :: http://yongyeol.com/blog/trackback/32

  1. 김우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8/08/06 15:20
    하잉! 20일에 제국으로 침공합니다.
  2. OpenID Logochatmat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8/08/06 17:24
    보스턴 날씨는 어떤가요? 김우재씨도 드디어 건너가시고...
  3. yy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8/08/07 04:06
    드뎌 오시는군요. ㅎㅎ

    날씨는 변덕스럽습니다. ~_~;;
[로그인][오픈아이디란?]



광우병 - 존 검머 2

2008/05/12 14:23


deulpul님의 글, 존 검머 이야기을 보고 씁니다. (출국 준비 관계로 심한 뒷북을 칩니다. ^^;; )

제 글의 의도

광우병의 공포를 과장하는 분들은 존 검머와 엘리자베스의 극적인 일화를 인용하며 '광우병은 무척 위험하며, 그걸 무시한 댓가는 존 검머와 엘리자베스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엘리자베스 본인은 죽어가면서도 언론에게 대중을 선동하지 말라고 부탁했으며, 그녀의 부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즉, 이 사건의 주인공들은 이 사건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발언을 계속 해왔으며, 이러한 사실은 언론이나 미국 쇠고기 수입을 강하게 반대하시는 분들에 의해 인용될 때에는 항상 생략되었습니다.

제가 지난 번에 썼던 글, 영국 농림부 장관 존 검머는 바로 이런 역설을 지적하기 위해 쓴 글이며 그 이상을 내포한 글은 아닙니다.

(사족인데, 희생자 가족들을 비롯하여 영국 국민들이 존 검머를 비난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라고 생각해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만 deulpul님이 지적하신 것과 같은 오독의 여지가 있긴 있겠군요. 그리고, deulpul님의 글을 읽으며 들었던 의문점은, 정말 스미스 부부와 엘리자베스의 행동이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hadream님이 썼던 글을 보고 기사를 찾아 읽은 후, 그들의 행동이 저의 무의식적인 기대를 배반하여 꽤 놀랐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검머의 극적인 쇼와 딸의 고통을 직접 보고서도 그렇게 이성적으로 대처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안전에 대한 과장과 위험에 대한 과장

deulpul님은 존 검머 사건에 대한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주셨고, 그것을 바탕으로 위험에 대한 과장뿐 아니라, 안전에 대한 과장이 위험하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중요한 지적이며, 위험이 매우 과장되어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제 입장에서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고 봅니다.

이 사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상식적 교훈은, 현재 실체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고 진행중인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I can assure 할 수 없으며, 누구도 자만할 수 없으며, 누구도 다른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질 수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질병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란 현재적 지식일 수밖에 없으므로,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서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실험실 안에서도 그래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발언에서는 훨씬 더 보수적이어야 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판단과 세일즈는 바로 불필요한 희생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한 부분은 당위에 가깝습니다. '얼마나' 보수적이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겠지만, 파괴적 결과가 있을지도 모르는 경우에는 위험 요소가 작아보여도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낫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일 것입니다.

그런데, deulpul님은 이러한 원론적 이야기와 우리의 무지에 대한 단정을 바탕으로 한쪽 주장을 정당화하고 계시며, 저는 이러한 논증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몰랐으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 바로 이 점이 핵심이다. 현재 인간광우병은 그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조차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 혹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알려지지 않은 실체를 놓고 조금씩 그림 맞추기를 하며 전체 모습을 파악하려 애쓰는 중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필연적으로 다양한 견해, 다른 주장들이 혼재되어 있다. 의료과학계에서도 말이다.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모르고 있을까요? 우리의 현재 지식에 대한 논의가 없는 채로,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 혹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며, 공허합니다. 물론 광우병의 원인이 프리온인지 아닌지조차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등, 광우병에 대한 연구에 다양한 견해들이 혼재되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로부터 우리가 위험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없음이 당연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대단히 많은 BSE 발병사례를 가지고 있는 영국의 통계를 가지고 있으며, 많은 연구자들이 상당한 사실들을 밝혀내었습니다. 수십년간 쌓인 우리의 지식을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한마디로 일축하는 것은 무지에 대한 과장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가 자명하지 않은가. 제2의 존 검머들이 나와, 그 때는 어쩔 수 없지 않았냐,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하는 소리를 뒤늦게 일삼는 꼴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deulpul님의 결론은 자명하지 않습니다. deulpul님은 광우병의 과거 통계 자료, 수많은 연구 결과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신 채로, 우리가 '얼마나' 모르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도 전혀 제시하지 않으신 채로,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위험은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당위명제와 미국의 경우와는 상이한 영국의 경우를 바탕으로 '자명하다'는 결론을 너무나 쉽게 내리고 계십니다. 정부의 협상 과정, 결과, 그리고 이후의 조치에서 야매성이 풀풀 풍겨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식의 논리에는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2008/05/12 14:23 2008/05/12 14:23
by yy
category : Science

TRACKBACK :: http://yongyeol.com/blog/trackback/30

  1. OpenID Logointhery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8/05/13 01:47
    관련해서 거의 눈팅만 하는 중인데, 오늘따라 왠지 눈알만 굴리는 저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져서 "동의 한표" 덧글이나마 달고 갑니다.

    전에도 그랬지만, 요즘도 요거조거 정리해주시는 킹왕짱 위키 페이지에 많은 신세 지고 있습니다.

    만약 출국 전에 번개를 하신다면, 혹시 애기도 데리고 나오시나염? 너무 어려서 어려우려나... ㅠ_ㅠ
  2. capcol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8/05/14 01:56
    !@#... 얼만큼 밝혀졌나, 그리고 그것이 과학의 틀에서 볼 때 어디까지 온 것인가 등을 일반에게 납득시키는 지난한 작업이 필요하죠. 그러니까 평소에 과학교육이 중요한 것!
    PS. 미국 건너오시면 언제 한번 중북부 위스콘신의 눈보라 언덕 지나치실일 있으면 알려주시길 :-)
  3. yy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8/05/14 12:55
    intherye/ 앗 intherye님을 뵐 수 있는 영광이? +_+

    capcold/ 앗 capcold님을 뵐 수 있는 영광이? +_+
  4. OpenID Logo홍민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8/05/14 14:25
    출국 언제 하세요? 번개는?!
  5. yy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8/05/15 14:51
    6/1입니다. 번개는 아마 24일?
  6. OpenID Logo채승병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8/05/15 17:19
    가기 전에 서울에 와서 같이 식사라도 하고 가지?^^
  7. yy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8/05/15 22:59
    좋죠~ 메일로 편하신 시간 알려주세요. :)
  8. 비밀방문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8/05/23 02:19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9. 비밀방문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8/05/29 17:33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0. yy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8/07/30 12:01
    비공개/ 혹시라도 보실지 몰라서.... 답변이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블로그 방문해보니 말씀하신 것 같은 멋진 스킨을 쓰고 계시네요. :) 그래서 이젠 필요하지 않으실 것 같긴 하지만.. 혹시 원하신다면 이메일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