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쇠고기 얼마나 위험한가 - 2

23 Oct 2007


이정환:미국 쇠고기와 언론의 여론 조작을 보고 미국 쇠고기 얼마나 위험한가라는 글을 썼습니다. 뒤이어 올라온 인간 광우병에 대한 짧은 언급이라는 글을 보고 저도 다시 씁니다.

먼저 제가 썼던 글의 논지를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1. 광우병에 걸린 수만 마리의 소가 유통된 영국에서도 vCJD의 발병은 극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2. 비슷한 질병인 쿠루의 사례에서 보면, 지금 보이는 데이터만 가지고 vCJD의 파괴력을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3. 하지만 쿠루의 경우를 보면 잠복기가 매우 긴 사람들의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았으며, 따라서 다른 근거가 없는 한, 미래에 일어날 vCJD의 재유행을 심하게 걱정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4. 설사 영국에서 계속 살아 왔더라도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아 보입니다.
  5. 따라서, 미국에서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도 거의 '0'이며, 한국에서 미국 쇠고기를 통한 인간광우병을 걱정하는 것은 더더욱 기우에 가깝다고 봅니다.

예방 우선의 원칙

정태인님의 정리를 보았지만 저에게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 증명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 건강과 환경 정책은 '예방우선의 원칙'을 적용합니다. 즉 먼저 규제하는 것이죠. 그러나 미국식 FTA는 증명하지 못하면 수입하라는 겁니다. 어떻게든 FTA를 맺으려고(별 뚜렷한 이유도 없이) 다른 나라는 감수하지 않는 위험을 축소하려는 게 문제입니다. 잘 모르겠으면 우선 금지시키는 게 맞겠지요. 어떤 규제든 그것이 필요불가결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라', '못하면 수입규제'라고 하는 것이 무역/경제를 생명보다 우위에 놓는 미국식 FTA의 기본 발상입니다. --정태인

무언가를 '증명'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예를 들어,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를 인간이 먹으면 vCJD에 걸릴 수 있다는 가설은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지만, 아직도 증명된 사실이 아닙니다.

'예방 우선의 원칙'은 그럴듯하지만, 그 자체로는 공허합니다. 위험의 정도에 대해 완벽한 무지가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경우, 대강의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추정을 바탕으로 적절한 선에서 예방을 할 수 있습니다. 균형추는 물론 '예방'쪽으로 더 쏠려야 합니다만, 지나치게 예방을 강조하면 엄청난 비용이 허공으로 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항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무서운 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입국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예방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특별한 전염병 위험이 없는데도 입국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심각한 검사를 하고 방역작업을 하는 것은 삽질입니다. 또다른 예로, "한국에서 테러가 일어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이슬람 교도들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자"는 정책은 어떨까요? 종교차별 문제를 뒤로 밀어놓더라도, 위험에 비해 너무나 큰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한심한 정책입니다. 이렇게 별로 큰 위험이 아닌데도 '예방 우선의 원칙'을 내세워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 건 넌센스입니다.

완전히 무지한 경우에는 예방 우선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위험도를 대강이라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방은 이렇게 추정된 위험도를 바탕으로 적절한 안전선을 정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완벽한 예방만을 강조할 경우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비용은 또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습니다.

광우병의 위험

결국 문제의 핵심은 '미국 쇠고기가 가진 광우병 위험이 얼마나 되는가'입니다. 증거로 뒷받침되는 '추정'을 제시하지 않은 채로, '증명 불가능하니 예방우선의 원칙을 적용해서 수입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교묘한 수사이며 옳지 않습니다. 이미 지난글에서 광우병의 위험이 거의 없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제가 든 근거나 주장중에 특별히 반박이 이루어진 부분은 없지만 추가 자료와 함께 다시 한번 정리해봅니다.

우리에게는 광우병에 대한 많은 데이터가 있으며, 이 데이터를 통해 어느정도 위험에 대한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저번 글에서 영국의 예를 통해 보여드렸던 것처럼, (30년 이상의 긴 잠복기를 가지는 또다른 창궐이 없다면) 그 위험은 너무나도 작습니다. 아마 번개에 맞을 확률조차도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입니다. 게다가 잠복기가 매우 길어 나중에 대단위의 창궐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미약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를 지지하는 증거들이 존재합니다. 첫째로, 쿠루의 경우, 잠복기가 매우 긴 사람들의 비율이 미미합니다. 둘째, 광우병의 잠복기는 평균 5년인 반면, 인간광우병의 추정 잠복기는 12~15년으로 이미 소의 2배에서 3배에 이릅니다. 셋째로, vCJD환자의 수가 다시 증가하려는 경향이 아직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만일 지금 바로 또다른 창궐이 일어난다고 해도, 30년 이상의 잠복기를 가졌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광우병의 위험이 매우 작다는 것은 그 전에 이루어졌던 동물실험을 통해서도 지지됩니다.

왜 종간 장벽이 있어서 프라이온이 다른 생물종 사이에는 잘 전염되지 않고 같은 종 사이에서는 쉽게 전염될까? 왜 입으로 섭취할 경우에는 잘 전염되지 않지만, 뇌에 직접 주사를 하면 더 쉽게 전염될까? --p. 333

... 뇌 추출물을 뇌로 직접 투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의 스크래피병을 다른 종에게 옮기기 아주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보였다. 엄청난 양이 아니면 음식을 통해 사람의 프라이온으로 원숭이를 감염시키는 것도 불가능한데 소와 사람의 차이는 원숭이와 사람간의 차이보다 훨씬 더 심하다. 뇌에 주사를 하는 경우가 섭취를 통한 경우보다 감염의 위험도가 약 1억 배나 더 높다고 추정되었다. --p. 337, Matt Ridley, Genome

이렇게, 저는 프리온병이 이종간에서, 입으로 섭취하여 전염되기는 정말 어렵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정환님이 쓰신

0.001g만으로도 인간 광우병을 옮길 수 있다.

라는 발언의 근거자료가 궁금합니다. '옮길 수 있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확률'입니다. 만약 저렇게 적은 양을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인간광우병에 쉽게 걸린다면, 영국은 이미 세계사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광우병이 걸린 소 한 마리는 5만5천마리의 소에 광우병을 감염시킬 수 있다. --이정환

이 문장도 의문입니다. 광우병에 걸린 소가 다른 소를 감염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소가 먹는 사료가 되는 경우 뿐이며, 이는 이미 90년대 초에 모두 금지되었습니다. 따라서 이건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위험을 과장하여 공포를 조장하는 발언입니다.

자연적으로 발병하는 광우병

인간의 경우, 전에 썼던 것처럼, CJD라는 희귀병은 저절로 발병할 수 있습니다. 이 병은 백만 명당 한 명꼴로 몹시 희귀하지만, 영국에서조차 vCJD보다는 훨씬 흔합니다. 소의 경우에도 광우병과 똑같은 증세를 보이는 병이 옛날에도 관찰된 일이 있으며, 소라고 이런 형태의 광우병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광우병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유력한 이론이 존재합니다. 첫번째는 양에 존재하는 프리온병인 스크래피가 사료로 쓰이게 되어 소로 옮겨졌다는 가설이고, 두번째는 자연적으로 광우병에 걸린 소가 사료로 쓰여 광우병이 퍼지게 되었다는 가설입니다. 종간 감염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볼 때,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가설이 더 유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설이 옳을 경우, 미국에서 발병한 광우병은 이러한 자연적 발병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키우는 소는 대략 1억 마리에 이릅니다. 인간의 경우보다 소의 경우에 이런 자연적 광우병 발병확률이 1/100정도라고 낮추어 가정해도 1억 마리 중에 한 마리 정도는 자연적인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기네 소를 잘 먹고 있는 미국과 영국

지난 기사를 내보내고 많이 받았던 질문은 역시 미국 사람들 다 먹는 쇠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는 것. 박 국장은 "영국에서는 광우병으로 160명 이상이 죽었는데 여전히 영국산 쇠고기를 먹는다"고 지적했다. 자기네 나라 쇠고기니까 어쩔 수 없이 먹는다는 이야기다.

사실 미국 사람들이 다 잘 먹고 있다는 주장은 매우 강력한 논거이며, '자기네 나라 쇠고기니까 어쩔 수 없이 먹는다'는 건 이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논거입니다. 영국인들이 영국산 쇠고기를 먹는 이유는, 지금까지 광우병에 걸렸다고 밝혀진 전체 소의 98%인 183,823마리의 소가 영국소임에도, 광우병으로 12년 동안 160명밖에 죽지 않았기 때문이며, 12년 동안 수백만명을 죽인 다른 병이나 다른 사인들에 비하면 그 위험성이 턱없이 작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18만 마리의 광우병 사례를 가지고 있는 영국과 비교할때, 단 2마리의 광우병 사례를 가진 미국 소를 통한 광우병을 걱정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영국이나 미국을 비롯해 광우병 위험 국가에서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는 것은 세계적인 상식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인간광우병은 매우 긴 잠복기, 병의 예후, 그리고 소가 소를 먹어서 걸린 병이라는 으스스함등으로 인해, 실제 위험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의 공포를 유발시키는 병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광우병 위험 국가에서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는다는 건 그러한 비합리적 공포를 보여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조류 독감이 발생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닭고기를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류독감에 걸린 닭이라도 70도 이상의 온도로 몇 분정도 익혀먹으면 위험이 없습니다. 게다가 잠복기가 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조류독감이 발생해도 얼마든지 걱정없이 닭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광우병의 경우에도 워낙 확률이 작기 때문에 거의 위험 없이 먹을 수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어쩔 수 없이 먹는다기보다는 실제로 그만큼 안전하기 때문에 먹는 것입니다. 과연 최고의 생물학자들을 보유한 미국이나 영국에서, 위험한 쇠고기를 국민들이 어쩔 수 없이 먹도록 만들까요? 적어도 18만 마리의 소가 감염된 것으로 판명되었고, 40만 마리에 이르는 소가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사람들의 식탁에 올라갔고, 4백만 마리가 넘는 소를 도살했으며, 160건 정도의 vCJD 발병사례가 있는 영국에 사는 매트 리들리는 영국이 취했던 조치들이 '과했다'고 까지 말합니다.

추가로 10만 마리의 소를 도살할 것을 명하였다. 이것은 너무 지나친 행위로, 마치 마굿간에 빗장을 건 후 다시 한 번 문을 걸어 잠그는 정도가 아니라 그 바깥에서 희생양을 올리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p. 338, Matt Ridley, Genome.

적어도 18만 마리의 소가 감염된 것으로 판명되었고, 40만 마리에 이르는 소가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사람들의 식탁에 올라갔고, 4백만 마리가 넘는 소를 도살했으며, 160건 정도의 vCJD 발병사례가 있는 영국에 사는 사람들은 영국 쇠고기를 잘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작 2마리의 소, 자연적인 발병일 수도 있는, 가 발견된 미국의 소고기가 얼마나 위험할까요?

참고로 미국은 약 20년전부터 광우병을 모니터링해 왔습니다. 전에 링크한 모기불통신의 광우병 검사라는 글을 보면 미국에서 광우병 검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2004 년에 미국농림부에서 내놓은 자료 에 따르면 268,000 마리를 샘플링해서 검사하면 천만마리중에 한마리가 광우병에 걸렸더라도 99% 의 신뢰도로 잡아낼 수 있다고 하는군요. ("Under the enhanced program, using statistically geographic modeling, sampling some 268,000 animals would allow for the detection of BSE at a rate of 1 positive in 10 million adult cattle with a 99 percent confidence level. In other words, the enhanced program could detect BSE even if there were only five positive animals in the entire country.")

당신의 가족에게도 먹일 수 있는가?

물론입니다. 고기를 먹으면서 광우병을 걱정하는 것보다는 고기가 상했을지를 걱정하는게 뱅만배 실용적이고, 광우병을 걱정하기보다는 비만을 걱정하는게 뱅만배 실용적입니다. vCJD를 걱정하기보다는 차라리 CJD를 걱정하는게 더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미국과 캐나다는 물론이고, 미국보다 수백배 많은 소가 광우병으로 죽은 프랑스, 독일등지에서도 소고기를 맛있게 먹었으며, 또 가더라도 거부감 없이 쇠고기를 먹을 것입니다.

결론

마지막으로 매트 리들리의 글을 좀 길게 인용합니다. 광우병의 위험이 절정이었던 1999년 즈음에 영국에서, 영국사람이 쓴 글입니다.

1988년 7월에 이르러서는 반추동물에게 사료를 주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 1988년 8월에 이르러 사우스우드 위원회는 광우병에 감염된 가축들은 모두 없애버려 먹이사슬에 들어오지 못하게 법률을 제정할 것을 권고하였다. ... 소의 뇌가 사람의 먹이사슬에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특정 소내장 금지법이 1년 후에 선포되었고, 1990년에는 송아지의 경우에도 금지되었다. 이 법의 시행이 좀더 빨리 이루어질수도 있었지만, 뇌 추출물을 뇌로 직접 투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의 스크래피병을 다른 종에게 옮기기 아주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보였다. 엄청난 양이 아니면 음식을 통해 사람의 프라이온으로 원숭이를 감염시키는 것도 불가능한데 소와 사람의 차이는 원숭이와 사람간의 차이보다 훨씬 더 심하다. 뇌에 주사를 하는 경우가 섭취를 통한 경우보다 감염의 위험도가 약 1억 배나 더 높다고 추정되었다. 이 단계에서 쇠고기를 먹는 게 안전하지 않다고 하면 오히려 무책임한 처사이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섭취에 의한 종간의 감염은 수십만 번의 동물 실험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정도이므로, 사실상 위험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실험대상은 바로 5000만명에 이르는 영국인이었다. 이렇게 큰 표본집단에서는 몇몇 경우가 생기는 것이 필연적이다. 정치가에게 안전상의 문제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다. 이들은 사람에서는 감염이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다. ...

1992년 이래로 태어난 가축들은 거의 광우병에 걸리지 않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의 히스테리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제 정치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결정들이 점차 광적인 상태로 바뀌었다. 내장금지법 덕분에 쇠고기는 최근 10년간의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제서야 쇠고기를 보이코트하기 시작했다.

... 영국에서는 수백만 명이 죽게 될 것이라는 황당한 예측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

영국 정부는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의 소비를 금지하는 쓸모 없는 추가적인 대응책을 내놓았고 이로 인해 대중적 경각심은 더욱 커져서 축산업 전체가 붕괴되었으며 도살될 가축들로 시스템이 마비되었다. ...

... 나의 경우에는 금지령이 확대된 이후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소꼬리찜을 먹고 있다. 

--pp.336-339, Matt Ridley, Genome.

물론 매트 리들리씨는 (아직은?) 멀쩡하십니다.

참고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